시대별 한복

금동신발[金銅履], 금동식리

· 시대 : 삼국시대, 통일신라

· 신분 : 미분류 / 남자

· 출처 : (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물, 백제, 국립나주박물관, 길이 31-32cm, 폭 9.3cm )/ (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의 용머리 장식 )/ (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의 선인 )/ (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백제, 국립전주박물관, 길이 31cm )/ ( 익산 입점리 출토 금동신발, 백제, 국립전주박물관, 길이 31.4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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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 신발 금동신발[金銅履], 금동식리

금동신발은 얇은 금동판을 이어서 신발의 형태로 만들고 바닥에는 굵은 못이 박혀 있으며 앞창이 약간 들린 형태이다. 여러 가지 무늬를 장식한다고 하여 식리(飾履)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종류의 금동신발은 삼국시대의 왕릉이나 왕릉급에 해당되는 무덤에서 3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금동신발이 신분이나 위세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동신발은 대체로 발등을 거의 덮었고, 앞꿈치는 높이 올라가며, 신바닥 아래에는 못을 박았다.
고구려의 금동신발은 지린성 지안시에서 출토된 것을 보면, 바닥면만 금속으로 만들고 그곳에 40여 개의 못을 박았고 신발의 옆과 위는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었다. 신라의 노서동 식리총 출토 금동신발은 쇠목이 붙어 있지 않은 대신 신발 바닥에 복잡한 문양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바닥 가장자리에는 두 줄의 구슬무늬와 꼰무늬, 그 사이에 불꽃무늬가 가득하고, 중앙에는 육각형의 거북등무늬 안에 가릉빈가, 새, 기린, 날개 달린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
삼국 중 금동신발은 백제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는데, 시기에 따라 형태나 문양이 변화하였다. 초기 한성 백제시대의 금동신발은 경기 화성 향남읍 요리 1호분이나 전남 고흥 안동고분에서 출토되었고, 발등이 낮고 옆판의 문양에 T자형 투각 문양이 연속된다. 웅진 백제시대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금동신발을 비롯하여 전북 익산 입점리 1호분이나 전남 나주 신촌리 9호분의 금동신발이다. 이것들의 형태는 발등이 수평에 가깝고 앞꿈치가 높은 각도로 올라간 것이다.
특히 나주 정촌고분에서는 피장자인 40대 여성이 착장했던 금동신발이 출토되었다. 이 신발은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하게 발목까지 덮개판이 올라간 장화 스타일이고, 발등 위에 용머리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전체 도안은 하늘을 상징하는 육각형[귀갑문] 안에 용과 봉황을 비롯하여, 장수나 장생불사를 의미하는 사람 얼굴에 새 몸을 가진 신[人面鳥神]을 비롯하여 일신양두(一身兩頭), 새, 짐승 등 다양한 문양이 투조되어 있다. 이러한 문양들에는 도교와 불교의 상징적 모티브가 공존하여 승천과 내세 불멸을 바라면서 불교적 내세관이 투영되어 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문양은 신발 위 발등 중앙에 있는 용머리 장식이다. 용은 삼각형의 눈, 상서로운 기운을 토하는 입, 돌기가 있는 뿔, 타원형의 귀가 표현되어 있다. 또 몸 하나에 얼굴이 두 개인 일신양두의 문양은 지상의 중심이자 신성한 장소를 의미한다. 이 두 문양을 통해 이 금동신발을 신은 40대 여성이 하늘로 승천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종류의 금동신발은 백제에서 가장 유행하여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국보-금속공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백제』, 통천문화사, 1999.

이한상, 『공예1-고분미술』, 예경, 2006.

장경희, 『한눈에 보는 화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9.

[집필자 : 장경희(張慶姬), 한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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