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김정호 (金正浩)
?~1864 / 조선후기 지리학자
생애 및 업적
  •  김정호는 가장 위대한 고지도 제작자며, 지리학자였다는 사실 외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확실히 밝힐 근거 또한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기록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김정호 신분은 양반이 아닌 평민으로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이 사실을 밝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유재건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하층계급 출신의 인물들이 각 방면에서 뛰어난 행적을 모아 적은 기록이다. 따라서 이 책에 적힌 사람들은, 양반계급이 아닌 평민들이 대상이 되고 있다.


     김성호에 대한기록이 이 책에 적혀있다는 사실은, 그가 평민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그가 양반계급이 아닌 하층계급이었다는 근거는, 신헌이 「대동방여도」 서문에서 김정호를 金君으로 호칭한 것에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신헌은 김정호의 지도제작을 후원한 사람으로, 높은 신분의 양반이었고, 나이도 김정호보다 7, 8세 정도 아래였다. 그런데 김정호를 아랫사람을 호칭하는 金君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김정호가 평민출신이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 된다. 또 하나는, 김정호가 청도 김씨인데 그 족보가 없다는 점이다. 청도김씨 봉산파로 알려져 있으나, 6.25 이전의 대동보에도 김정호는 족보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족보 없는 평민출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평민인 그가 양반계급의 최한기와 친구관계가 이루어진 계기는 알 수 없으나, 어릴 때 그들이 만나, 지지와 지도에 대한 뜻이 같아 지기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먼저 그가 어떤 작업들을 남겨놓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최소한 김정호가 만든, 3대 지지(地志)와 3대 지도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대동여지도의 제작 배경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김정호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지란 역대의 제도와 문물, 풍습 등과 지역과의 관계를 적은 지리지를 말한다. 지도란, 주와 현, 산과 물 등의 구분 그리고 그 시설물의 위치와 거리, 면적 등 지역의 형체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에서 지지가 나오고 지지를 바탕으로 지도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은 고산자가 「동여도지」를 만들 때 쓴 자서에 잘 밝혀져 있다. 김정호는 3개의 지지를 남겼는데 ①동여도지 ②여도비지 ③대동지지가 그것이다. 3개의 지도는 ①청구도 ②동여도 ③대동여지도이다. 이 모든 지지와 지도는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는 일련의 지도 제작과정의 단계로 볼 수 있다.


     「동여도지」는 김정호가 만든 최초의 지지이며, 지도의 근원이다. 「동여도지」를 근거로 「청구도」라는 지도가 맨 처음 만들어졌다. 「동여도지」를 다시 보완하여 만든 것이 「여도비지」이고, 「여도비지」를 기초로 만든 지도가 「동여도」이다. 「동여도」는 육필로 그린 지도인데, 이것을 원본지도로 하여,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한 지도의 판목을 만들었다. 이 판목과 목판본 지도로 된 것이 「대동여지도」이다. 「동여도지」와 「여도비지」를 종합하여 다시 만든 것이 「대동지지」이다. 이런 상호 연관관계를 볼 때 「동여도지」에서 「대동지지」까지, 「청구도」에서 「대동여지도」까지 모두 「대동여지도」와 관계를 지닌 일련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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