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신사임당 (申師任堂)
1504~1551 /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
생애 및 업적
  •  사임당은 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교의 경전과 명현들의 문집을 탐독하여 시와 문장에 능했으나 남은 작품은 2편의 시문과 1편의 낙귀뿐이다. 율곡이 6살 때 친정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는 길에 대관령에서 지은 시문과, 서울에서 친정어머니를 기리며 지은 시문 그리고 낙귀 한 절을 통해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느낄 수 있다.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경문(經文)을 익히고 문장, 침공(針工), 자수(刺繡)에 능했으며, 특히 시문(詩文)과 그림에 뛰어나 여러 편의 한시(漢詩) 작품이 전해진다. 또한 안견(安堅)의 영향을 받은 화풍(畵風)은 여성 특유의 섬세 정묘함을 더하여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산수(山水), 포도, 풀, 벌레 등을 잘 그렸다. 사임당의 그림에 후세의 시인, 학자들이 발문을 붙였는데 한결 같이 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여러 기록이 있는데 그중에 명종 때의 어숙권(魚就權)은 『패관잡기(誘官雜記)」에서 '신부인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공부했는데 그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의 다음에 간다'고 한다.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賢母良妻)의 귀감(龜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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