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금하 하규일 (琴下 河圭一)
1863∼1937 / 국악사(國樂師)
  • 문화관광부는 근세가곡의 거장으로 오늘의 가곡 기틀을 확고히 세운 금하 하규일 (琴下 河圭一 : 1863∼1937) 선생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하규일 선생의 자(字)는 성소(聖韶)요, 호는 금하(琴下), 본관은 진주(晋州)로 철종 14년(1863년) 음력 6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11년간 집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14세에 관례(冠禮), 19세에 음악수업에 들어가니 스승은 최수보(崔守甫)이다. 선생의 집안은 세습적으로 가곡(歌曲)을 잘하여 재종(再從)되는 하순일(河順一), 숙부(叔父) 하준권(河俊權) 등이 당대의 선가(善歌)로 이름이 높았으며, 당세(當世)에 이름 높던 박효관(朴孝寬)에게도 배웠다.


     선생은 31세 때 관계(官界)에 진출하여 한성소윤(漢城少尹) 겸 한성재판소 판사(判事)와 내장원(內藏院) 문교정리위원(文敎整理委員) 겸 전남독쇄관(全南督刷官), 진안군수(鎭安郡守) 등의 벼슬을 지냈고, 국치(國恥) 후에는 관직을 버리고 다시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그 뒤 선생은 정악전습소(正樂傳習所) 학감(學監)에 취임하여 조선음악뿐만 아니라 서양 음악의 수용과 그 보급에도 공헌하였다. 조선정악전습소는 가요부(歌謠部)와 음악부(音樂部) 두 부를 두고, 여기에 이수과·교수과 둘로 나누어, 이수과는 이미 수학한 이로 더욱 연수케 하는 과정이요, 교수과는 일반 초보자의 초급반이었다.


     선생은 학감의 직분이었으나 중부(中部) 상다동(上茶洞)에 자리한 여악분교실장(女樂分敎室長)을 겸하니, 이것이 그 뒤 기생조합(妓生組合)과 관련을 가져 여악 (女樂)의 보존과 신장(伸長)에 큰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생의 내력은 궁중에 매인 약방기생(藥房妓生), 상방기생(尙房妓生)이니 하는 일종의 특수한 여자 직종(職種)에서 유래되고, 함께 가무서화(歌舞書畵)를 배우고 익혀 궁중에 잔치가 있으면 가무(歌舞)로 봉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고종(高宗) 말기에 그 기생들이 궁중에서 물러 나와 더러는 하향(下鄕)하고 나머지 기녀들은 서울에 남아서 기업(妓業)을 차리게 되었다. 이 때 선생은 지아비가 없는 이른 바 무부기(無夫妓)를 모아 무부기조합을 만들고 이르기를 정악전습소 여악분교실이라 하니 선생은 기생조합의 창시자가 되었다. 기생조합이 권번(券番) 으로 이름을 바꾸고 처음 대정권번(大正券番)이었다가 뒷날 조선권번(朝鮮券番)으로 바뀌었다.


     하규일 선생이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촉탁으로 임명되어 아악부 젊은 연주직과 아악생(雅樂生)에게 가곡 전수를 책임지고 출강한 것이 1926년 4월의 일이었다. 아악부에서 가곡, 가사(歌詞), 시조(時調) 등 우리나라의 정가(正歌)를 전승함으로써 귀중한 전통 가악(歌樂)의 절멸을 막고, 굳건히 뿌리내려 길이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선생의 공로이다. 이 일을 이왕직 당국에 건의하여 성취시킨 아악부의 아악사, 김영제(金 濟)·함화진(咸和鎭) 두 분의 업적 또한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선생이 서거하기까지 장장 12년간 매일 아악부에서 하루 두 시간씩 열성을 다한 강의는 엄중하기로 유명하였다.


     선생이 한 평생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제자는 매우 많아, 남창으로 일러도 아악부원 양성소 출신만도 거의 60명을 육박하고 있고, 그 여창으로 말하면 정악 전습소 다동 여악분교실로 시작하여 다동조합, 대동권번, 조선권번에 이르기까지 근 1세대에 걸쳐 배출한 여제자는 실로 무수하다. 아악부에서의 제자로 그 중 성가(成家)한 이가 7-8명, 후계자로는 아악수장(雅樂手長) 이병성(李炳星),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주환(李珠煥) 등이나 모두 옛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은 물론 국악계를 통틀어 보더라도 이 가곡에 있어서 그의 유(流)가 아님이 없으며, 선생은 1937년 5월 22일에 서거하시니 향년 75세였다. 선생의 가집(歌集)으로 1931년에 펴낸 '가인필휴(歌人必携)'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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