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송암 박두성(松庵 朴斗星)
1888∼1963 / 한글 점자(點字) 창안자
생애 및 업적
  • 박두성(松庵 朴斗星 : 1888∼1963) : 시각장애인 교육자, 한글점자 창안,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통하여 한글점자 보급,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간 회람지 「촉불」발행, 주요서적 점역보급(성경, 명심보감, 의학서적 등) 한글점자 창안자이며 시각장애교육에 생애를 바친 박두성은 구한말인 고종25년에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박기만씨의 6남 3녀 중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8세가 되던 1895년 7월 무관 출신 성제(誠齊) 이동휘(李東輝)가 강화도에 세운 보창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보통학교의 신학문을 수학하고, 성제의 주선으로 한성사범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에서 수학하였다. 졸업 후 어의동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 전신) 교사로 발탁되어 8년간 근무하였다. 그 후 1913년 제생원(濟生院) 맹아부(盲啞部) 설립과 함께 교사로 발령됨으로써 시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고 시각장애인들에게 한글점자를 창안하여 주어서(1926년)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마음대로 쓰고 읽게 하여 암흑 속에서 허덕이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광원을 찾아주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이며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세종대왕으로 일컬음을 받는 분이시다.


     박두성의 시각장애인 교육관은 애맹정신의 실천, 끊임없는 권학정신, 생활자립을 위한 교육강화, 잠재능력 개발이었으며 이에 평생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쳤다. 박두성의 위대함은 한글점자 창안은 물론 한글점자의 보급을 통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계의 문맹퇴치에 기여한 것이다. 성경을 비롯하여 76종의 맹인용 교육자료 도서를 점역·출간하였으며, 점자도서 보급 사업, 통신교육사업 실시, 주간 회람지 「촉불」 발행 등을 통하여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점자를 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조선어 점자연구회, 육화사 등의 연구조직을 결성, 한글점자를 더욱 연구함으로써 그 실용성을 높였다.


     박두성의 신념은 시각장애 교육이 단지 장애인교육이나 자선사업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직업교육과 더불어 시각장애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 양성과 민족정신을 싹틔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박두성의 신념은 일제치하의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모든 학교의 조선어 교육이 폐지된 상황에서도 제생원에서는 우리말과 글의 공교육이 계속되도록 하였다. "… 실명이라는 1차적인 신체적 장애에 시각장애인이 마음대로 읽고 쓸 한글점자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의 심안을 밝히지 못하며 이로 인해 제 2차, 3차로 장애가 중복·심화되어 정서불안, 열등감, 비사회적 행동의 부차적 장애를 가져오게 되므로 점차 이질적인 방향에로 고착화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장애를 예방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각장애인에게 문자를 주어 그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박두성의 이런 애절한 진정은 총독부를 설득하였다.


     당시 구전식 교육과 점복업을 주로 하는 시각장애인의 생활기반에 박두성이 시각장애 교육에 투신함으로써 한글점자의 창안과 보급, 교수학습방법의 기반 연구 등을 통해 우리나라 시각장애 교육은 그 당대에 거의 현대적 모습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박두성의 가르침은 직간접으로 시각장애자 지도자, 교육계·종교계·의약계·예술계의 박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들을 우리나라 사회에 배출하였다. 박두성은 우리나라 모든 시각장애인의 정신적 지주임과 동시에 애맹사상가로 그 불멸의 업적은 오늘날은 물론 후세에까지 길이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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