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인물

강정일당 (姜靜一堂)
1772~1832/ 조선후기 여류시인
생애 및 업적
  •  강정일당은 가난한 선비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유별나게 총명하면서 효성스러웠고, 20세 때 6살 연하의 윤광연과 결혼한 후에 시부모와 남편을 섬김에 있어 옛 경서의 법도에 따라 언제나 몸과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는 삶의 법도대로 실천했던 여류 문사(文士)며, 성리학자(性理學者)였다.


     충북 제천 근우면 신촌에서 태어난 그분은 결혼 전 외할아버지와 부모에게서 4서 3경 등을 두루 익혔고, 시서에 재주를 보여 주변사람들에게서 “정말로 백세(百世)에 준거(準據)가 될 만한 천인(天人)이구나!” 칭송을 얻었던 여성 어른이었다. 한편, 정일당 어머니(안동 권씨)의 태몽에서도 “이 아이는 지극한 덕이 있어 너에게 맡기니 잘 기르라.”고 전하며, “자라면서 항상 성격이 온순하고 정결하였다.”는 말과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성으로 섬겨서 아침저녁으로 예를 다했고, 옆에 앉아서는 늘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양반 집안과 결혼한 후에도 3년간을 친정집에서 살아야 했을 정도로 빈한하였으나 시댁 조상을 섬기고, 친척 이웃 사람과도 덕을 베풀어 모범을 보이면서 시어머니(아호;지일당只一堂)와 법도대로 예의를 실행했으며 특히, 지일당과 시문(詩文)화답을 할 만큼 학예의 경지를 넘나든 분이었다. 소년 시절에 어려운 처지의 남편을 학문의 길로 들어서게 늘 권고를 다하면서,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고, 의리를 버리고 돈벌이만 하는 것은 가난을 참고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오니, 바느질과 길쌈은 대강 할 줄 아는 제가 하루 세끼는 잡수시게 할 것이온 즉,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성현의 글을 읽으시고 살림엔 괘념치 마옵소서 선비로서 좋은 스승과 좋은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 달라고 쪽지 편지글로 당부를 하며, 자상스럽게 충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다만, 슬픈 일이라면 슬하에 5남 4녀를 낳았으나 모두 1년을 못 넘긴 채 키우지 못해 후세가 고단했고, 불행스러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일이 애석할 따름이다.


     남편 먼저 세상을 떠난 정일당은 <정일당유고>에 남겨진 40여 편 한시(漢詩)에서 ‘제석감음’, ‘야좌’, ‘청추선’, ‘탄원’ 등 대표작을 남겼으나 한 결같이 교훈적 내용이 강조된 서정시들이며, 사람들이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글로서 학문속의 성(誠)과 경(敬)이 강조되어 있다. 좋은 세월 하는 일 없이 보내 / 내일이면 내 나이 쉰하나 밤중에 슬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 남은 여생 오직, 내 한 몸 닦을 뿐 / - ‘섣달 그믐 밤에’(제석감음) 정일당 인물평에서도, “우리나라에 신사임당과 윤지당, 두 부인의 덕행 있었는데 사임당(師任堂)은 시를 잘하고, 윤지당(允摯堂)은 문장을 잘해 이름난 분들이다. 정일당(靜一堂)은 시만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사서(四書) 읽기를 좋아해서 많은 기록을 남겨 놓았다.”라고 적고 있다.


     정일당이 세상을 떠나 애석해 하는 여러 사람들의 추도문에도, - 학문을 연구하는 선비의 진지한 삶을 살았던 이 - 덕행, 학문으로는 어찌 군자라고 아니 하겠는가? - 시와 학문, 문장과 도학 모든 면에서 훌륭하였던 어른 - 지극히 어질고, 후하고, 정성되어 나에겐 스승도 되고, 아내도 되었어요. - 당신은 곧고, 맑고, 순일했구려. 당신이 이룩한 학문 또한 순수하고 거룩했어요. - 양반집 따님으로 거룩한 덕을 타고 나서 ‘인의충신’을 구비하셨도다! 여러 편의 글귀에 담긴 내용을 읽으면서 조선 시대 18-9세기의 이 나라에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우리의 ‘으뜸 어머니’로 모셔 가는 성남시민 앞에 마땅히,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삶의 지표를 귀담아 들어 뒤쫓으려는 참된 깨우침을 알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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