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인물

김유정 (金裕貞)
1908~1937 / 소설가
생애 및 업적
  •  강원도 춘천군 신동면 증리가 고향인 김유정(1908~1937)은 향토색 짙은 토속어를 생동감 있게 구사하여 30년대 한국 농촌의 실상과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해학적인 시각으로 그려냄으로써 한국 소설문학의 새 지평을 펼쳐 보인 당대의 가장 개성 있는 작가로 그가 남긴 작품은 시대를 넘어서는 높은 문학성을 띄고 있다. 그는 재동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대학 문과에 입학했으나 두 달 만에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금병의숙>이란 이름의 학당을 지어 야학을 통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가 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가작 입선됨으로써 혜성처럼 등단한 김유정은 29세의 짧은 인생을 마치기까지 불과 2년 남짓한 기간에 3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예닐곱 살 때 부모를 모두 잃는 불우한 환경에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눌언교정소에 다니는 등 열등감이 심해 우울한 성격으로 자랐다 특히 춘천의 천석군 부자였던 집안이 그의 형 김유근의 방탕한 생활로 몰락하는 바람에 극도의 정신적 고통과 가난으로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그의 젊음은 심한 치질과 폐결핵까지 앓는 절망적인 상황에다 네 살이나 연상인 당대의 명창 박록주를 짝사랑하다 이루지 못하는 실의의 시간으로 메워졌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글 쓰는 열정을 잃지 않고 천부적인 언어감각에 의한 투박하면서도 정확한 문장과 독특한 해학의 능청으로 『봄봄』,『동백꽃』,『만무방』,『산골 나그네』,『소낙비』,『땡볕』,『따라지』,『금따는 콩밭』 등의 향토색 짙은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특히 김유정의 작가적 재능은 인물창조에서 유감없이 드러나 어리석고 무지한 「바보열전」의 전형적 인물들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당대의 농촌현실을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인 현실 중시의 농민 문학이 아닌 당시의 농촌과 서민생활에 깊숙히 파고들어 그 생활감정과 생활습속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소설의 격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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