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인물

황희 (黃喜)
1363~1452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생애 및 업적
  •  황희는 세종 때의 명재상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는 90세 까지 장수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3년 전까지 24년 동안 재상으로서 임금을 보좌하며 국정을 총관해서 우리 역사에서 빛나는 세종대의 황금기를 낳게 한 대 정치가이며, 동시에 깨끗한 청백리로서 모든 공직자의 귀감이 되어 온 것이다. 그리하여 황희는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외경스러운 존재로 떠오르게 된다.


     황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가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서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끊임없는 노력을 함으로써 드높은 경륜을 쌓아갔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고려가 쇠미해져 멸망에 이르고 마침내 조선이 건국되는 커다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현실을 직시하며 적극적 자세로 대처하였고, 득의에 찬 시절을 보내다가 큰 시련을 겪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대기만성의 대 정치가의 전설을 남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의 뛰어난 자질과 굳센 의지, 그리고 끊임없이 닦은 학문이 큰 작용을 하였다.


     황희는 현실적 실천적 정치가였고 결단력이 뛰어나고 포용력이 컸다. 그는 대범하면서도 실무에 밝았고, 모든 상소와 건의문이 대개 직접 그 자신이 손수 작성한 것이었으니, 이상적인 정책을 막연히 내세우거나 날카로운 명분론을 제기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던 부류의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신속 정확하였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조화시킬 수 있었음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말해주는 바로서,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황희는 명재상이 되어 빛나는 역사의 한 시대를 창출하는 주역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청백리로서도 유명하였다. 청렴한 몸가짐과 검소한 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거니와 약 60여 년간 관직에 있었고, 24년간 재상의 자리를 지켰던 황희가 청백리로서도 뚜렷한 이름을 남겼다는 것은 그에 대한 인간적 매력과 외경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당시 조선의 양반관료는 대개 탈법과 부정으로 부를 축적하여 그들의 특권적 위치를 강화시키는 것이 흔한 일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황희의 사례는 사회적 갈등과 불신의 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우리 역사에 밝은 빛을 더하여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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