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서울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조선왕조 이래로 우리나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국민의 20% 이상이 거주하는 최대도시이며, 한국의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서울’은 원래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라벌(徐羅伐)’,‘서야벌(徐耶伐)’ 등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서’(徐)‘,서나’(徐羅)‘서야’(徐耶)는 높고 신령하다는 우리말 ‘수리’,‘솔’,‘솟’의 음사(音寫)이며, ‘벌(伐)’은 벌판, 큰 마을, 큰 도시 등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의 음사, 그리고 ‘울’은 ‘벌’의 변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은 ‘높고 신령한 벌판?큰 마을?큰 도시’, 즉 상읍(上邑) 혹은 수도(首都)를 뜻한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개창 이래 서울은 한양(漢陽)에 자리 잡았다. 한양이란 한수(漢水 : 한강)의 북쪽이라는 뜻을 지닌 지명이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민심을 일신하고 국기를 튼튼히 하고자 천도를 결심했다. 처음에는 계룡산이 수도로 거론되었으나 하륜(河崙)과 정도전(鄭道傳),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건의를 받아들여 1394년(태조 3) 한양으로 천도했다. 한양을 새 왕조의 수도로 정하는 데는 한양이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고, 한강과 같은 큰 강을 끼고 있어 교통 상 편리한 곳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 또한 당시 풍수설(風水說)도 큰 몫을 했다. 백악(白岳)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낙산(駱山:左靑龍)과 인왕산(仁王山:右白虎)이 좌우로 둘러 에워싸고, 남산(南山:또는 木覓山, 案山)이 알맞게 앞에 놓여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한강 너머로 멀리 관악산(冠岳山:朝山)이 조아리는 한양이야말로 능히 왕도가 자리 잡을 만한 명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도성·궁궐·종묘·문묘·사직단·조정청사·주거지 및 시전의 배치와 가로의 건설 등 도시 내부구조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395년에는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고 도성을 중심으로 성저 10리에 이르는 5부(東部·西部·南部·北部·中部) 52방(坊)의 행정구역을 확정했다. 옛 남경의 이궁(離宮) 터에 새 궁궐 경복궁(景福宮)을 짓고 많은 전각을 배치했다. 좌묘우사의 원칙에 따라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고 궁궐 남쪽으로 대로(지금의 세종로)를 내어 양쪽에 육조와 중추부·사헌부 등 주요관청을 배치했다. 1396년에는 백악산-인왕산-목멱산-낙산을 잇는, 길이 5만 9,500자(약 17km)의 도성이 축조되었고,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4대문과 4소문이 뚫렸다. 동대문과 남대문은 1396년에 각각 준공되었다. 지금까지도 '4대문안', 또는 '문안'(城內)이라는 말이 도심을 가리키는 구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서울의 공간적 골격은 수도 건설 초기에 계획된 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겠다. 종로를 중심으로 행랑과 시전이 배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상업지역이 형성되어갔다. 종로에서 북쪽, 즉 궁궐·종묘·사직이 자리한 '명당'과 그 부근에는 양반계급의 주거지역인 북촌(北村)이, 그리고 상업지역을 지나 남산 기슭 쪽에는 하급관리와 세도가 없는 양반들이 모여 사는 남촌(南村)이 이루어졌다. 그에 비해 중인·상인·천민들의 주거지역 분화는 뚜렷하지 않았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일제가 물러가고, 경성은 '서울'이 되어 미군정 치하에 들어갔다. 1946년 9월 '서울시'로 되어 경기도에서 분리되었고, 10월에는 일본식 지명을 우리 것으로 바꾸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수도로 결정되었고, 1949년 '서울특별시'로 되면서 136.06㎢이었던 시역을 268.35㎢로 확장하고 성북구를 신설, 9개구를 가진 대도시로 새 출발했다. 한국전쟁 때는 임시수도가 부산으로 이전했고, 1953년 환도했을 때의 서울은 그야말로 전쟁이 남긴 폐허였다. 곧 복구사업에 착수하여 제 모습을 갖출 무렵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군사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하여 대도시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때부터 서울은 거대도시를 향해 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기대효과
  •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세계 거대도시 중 하나인 서울을 상징화한다는 것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기대효과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옛 궁궐 및 도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 보존과 교육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서울은 창덕궁, 종묘 등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의 상징이기에 다양한 문화산업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조선왕조의 수도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임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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