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사전

액주름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 직후까지 입었던 남성의 포(袍)이다.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이 잡혀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문헌에는 ‘액추의(腋皺衣)’, ‘액주름(腋注音)’으로 기록된다. 형태는 곧은 깃이 달렸고 겨드랑이 아래에는 작은 사각접음무와 사다리꼴무가 달리고 바로 아래에 주름 잡힌 큰 무가 부착되어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철릭의 상하 비율 변동된 것 처럼 액주름도 옷 품이 작아지고 소매가 좁아지면서 겨드랑이 주름 위치가 위쪽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보인다. 액주름에 사용된 옷감은 색상이 없이 명주나 무명 등의 소재가 대부분이며 겹이나 솜옷, 누비옷이 많다. 옷의 길이는 허벅지 정도로 다른 포류 보다는 약간 짧은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액주름은 포 안에 방한용 속옷으로 입거나 집에서 편하게 입은 편복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 아청색 공단으로 만든 전장후단(前長後短) 형태의 액주름이 있는데 이는 마상의(馬上衣)로 착장한 특별한 경우이다.
유물은 16세기의 액주름이 가장 많고 17세기 전반기에 해당하는 정휴복(1529~1604), 조경(1541~1609), 강대호(1541~1624), 윤선언(1580~1628)의 액주름이 있다. 이후의 유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궁중기록에는 액주름이 늦게까지 기록이 보이지만 사대부의 옷으로는 답호가 임란 이후 17세기 초에 점차 사라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액주름 역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참고문헌
박성실(2006), 「출토복식을 통해보는 임진왜란 이전 남녀복식의 조형적 특징」, 『韓國服飾』 第24號,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이황조(2006) 「조선시대 腋注音의 조형적 특징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석사학위논문.
강순제 외(2015),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집필자 : 이명은(李明恩),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키워드 : 액주름, 腋注音, Aekjureum, Man's coat with side pl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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