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보기

왕비 노의

노의는 조선초기에 왕비 및 정4품 이상의 정처가 입던 예복으로 고려시대에도 존귀한 자의 복식으로 인식되던 옷이다. 부인이 길을 갈 때 입는 옷, 즉 외출예복으로 왕실에서는 국말에 이르기까지 왕비를 비롯하여 세자빈, 숙의, 공주, 옹주 등이 혼례에 착용하였다.
󰡔(인조장열왕후)가례도감의궤󰡕에 제시된 노의의 외형은 적의와 마찬가지로 앞이 짧고 뒤가 길다. 또한 금원문 315개를 부금한다고 하여 날개를 펼친 1쌍의 새가 위 아래로 마주 놓인 금원문을 제시하고 있다. 노의로 추정되는 기성군부인 평양이씨(1502~1579년) 묘 출토물은 조선전기의 원삼처럼 남자 단령의 특징을 띠며 금원문 장화단으로 361개의 단봉을 직금한 옷감을 사용했다. 조선후기 청연군주(1754~1821년) 묘 출토 노의는 원앙 1쌍이 마주보는 금원문 215개가 부금 되어있으며 동시대의 원삼과 동일한 외형적 특징을 지녔다. 원삼과 같은 대금형의 배자 깃, 넓은 소매에 색동과 한삼을 달았고, 당의와 같은 곡선을 이루며 양 옆은 트였고, 몸판 전체에 금원문 215개가 찍혀있다.
노의를 입을 때는 왕비나 세자빈이 남색 경의(景衣)를 갖추고, 공주는 남광사 전면사(前面紗)를 썼다. 내외용 쓰개인 경의가 장옷류인지, 쓰개치마류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명의(明衣)처럼 길을 갈 때 먼지를 막아 옷을 깨끗하게 하려는 용도였다는 것으로 보면 장옷과 같은 종류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편 공주는 면사의 한 종류로 추정되는 전면사를 썼다.
 
참고문헌
경기도박물관(2014), 『조선 왕실 선성군 母子의 특별한 외출』, 민속원.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송미경(2016), 「기성군부인 평양이씨(1502~1579)묘 출토복식 연구」, 『한복문화』 19(4), 한복문화학회.
이성희, 「조선후기 노의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집필자 : 김소현(金素賢), 배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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