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음력을 써왔다. 음력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우리는 설날,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전통적인 음력을 따른다. 생일이나 기일을 음력으로 챙기는 가정도 적지 않다. 특히 이슬람과 유대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전통 달력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중국도 음력의 전통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양력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회회력이라고 알려진 이슬람의 회교력 또는 마호메트력이 가장 전형적인 음력이다. 29일(짝수달)과 30일(홀수달)로 구성된 12개월을 1년으로 하고, 30년 동안 11번의 윤일(12월)을 더해준다. 회회력은 지금도 이슬람 문화권의 전통 달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인 라마단은 회회력의 ‘9월’을 뜻한다. 이 회회력은 원(元)과 명(明) 시대에 아라비아에서 중국으로 전해졌고, 세종 때 만들었던 칠정산외편편(七政算外篇)도 회회력을 따른 것이다.
회회력의 문제는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회회력에 계절의 변화를 반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3년 단위로 태양의 공전 주기와 무려 34일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평균 3년마다 윤달을 끼워 넣어야 하는데, 언제 어디에 넣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회회력에 계절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방법 중 주로 사용된 방법은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으로 19년에 7번의 윤달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8년에 3번의 윤달을 넣거나, 27년 동안 10번의 윤달을 넣는 방법도 있었다.
혼천의(渾天儀)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혼천의’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선기옥형’ 또는 ‘기형(璣衡)’이라 불렸다. ‘혼천의’의 혼(渾)은 둥근 공을 말하는 것으로, 동심다중구(同心多重球)를 의미한다. 혼천의는 아침·저녁 및 밤중의 남중성(南中星), 천체의 적도좌표·황도경도 및 지평좌표를 관측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계절의 변화에 대한 정보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농경 문화권에서는 태음태양력을 제작하는 일이 국가의 가장 막중한 업무였다. 중국을 비롯한 바빌론․유대․그리스 ․인도 등의 종교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태음태양력을 개발했다.
달의 위상 변화와 태양에 의한 계절의 변화를 일치시키기 위해 고도의 천문관측 기술이 필요했다. 중국은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천문관측으로 알아낸 절기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간 누적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한(漢)의 태초력(太初曆)에서 청(淸)의 시헌력(時憲曆)에 이르기까지 십여 차례의 개혁이 있었다.
우리가 사용했던 음력은 중국에서 개발된 ‘중국력’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조공의 결과로 중국이 제작한 태음태양력을 편찬한 ‘책력’(冊曆)을 얻었고 이는 당시 달력이 기술 패권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과거나 현재 모두 국력의 기반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은 1582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그레고리력은 기원전 로마 제국을 건국한 로물로스가 기원전 753년에 만든 로마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춘분을 포함하는 ‘마르티우스’(오늘날의 3월)에서 시작하는, 10개월 304일로 구성된 전통적인 로마력은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래서 10번째 달이었던 ‘디켐브리스’(오늘날의 12월) 다음에 두 얼굴을 가지고 성문을 지키는 ‘야누스’에서 유래된 ‘야누아리우스’(오늘날의 1월)와 정화(淨化)를 뜻하는 ‘페브루아리우스’(오늘날의 2월)를 넣어 1년을 12개월로 만들었고, 야누아리우스를 새해의 시작으로 만들었다. 그런 전통은 기원전 45년의 율리우스력에서도 유지되었다.
그레고리력은 1년 365일을 30일과 31일로 구성된 12달로 구분한다. 2월은 28일로 하고, 4년마다 2월에 윤일을 둔다. 구성 원칙이 단순한 그레고리력의 등장으로 누구나 쉽게 양력 달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계절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반영한 정확한 달력을 개발한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고리력의 장점은 계절의 예측 능력이다. 계절은 지구 자전축이 공전 궤도에서 36.5도 만큼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다. 북반구에서는 기울어진 자전축이 태양을 향하고 있는 여름철 태양의 남중 고도가 높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진다. 반대로 기울어진 자전축이 태양에서 먼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겨울에는 태양의 남중 고도가 낮아지고,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그레고리력은 그런 계절의 변화를 근거로 만들어진 달력이다. 그래서 낮이 가장 긴 하지는 거의 언제나 6월 21일이고, 밤이 가장 긴 동지는 거의 언제나 12월 22일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은 거의 언제나 3월 21일과 9월 23일이다. 동양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24절기가 모두 그레고리력에 규칙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양력이라고 부르는 그레고리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6년 1월 1일부터로, 고종 황제의 을미개혁에 따른 과감한 선택이었다. 과학의 발전에 따른 개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프라하 천문시계
1410년에 설치되었으며, 하늘의 해와 달의 위치 등 다양한 천문학적 정보를 표시한다.
전 세계에서 양력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처럼 음력의 전통을 완전히 포기한 국가도 있다. 세계화된 시대에 양력이 편리한 선택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전통 달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대교의 로쉬하샤나(Rosh Hashana), 이슬람의 라스앗싸나(Ras as-Sanah)을 비롯한 종교적 축일은 모두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 달력을 따른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고려한 음력은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의 변화와 생이 밀접하게 맞닿는 바닷가 어민들에게는 여전히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달을 보고 만든 달력인 음력, 음력의 약점을 보완하는 24절기 양력을 생각하며 시간의 흐름을 읽는 방식의 변화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다.
- <어쩌면 이미 알다시미, 세시풍속 vol.1 원형들> 中
- ‘가깝고도 먼 시간, 음력’(글 이덕환) ⓒ 2022,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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