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한식은 무엇일까? 양식, 중식, 일식을 말하듯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식이 그 ‘한식’일까? 아니면 전통을 이야기할 때 탕평채, 비빔밥, 김치가 언급되면서 말하는 그 ‘한식’인가, 그럼 한식문화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문화적 관점에서 한식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개념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를 찾아보고 한식과 한식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의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떤지 살펴보자.
한식의 사전적 정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다. 기존 여러 연구에서도 한식을 정의할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고유의 조리 방법으로 만든 음식이나 식품이라는 고유성을 핵심으로 짚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식을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식이 다문화사회에서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고유성, 역사성 이외에도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음식으로 한식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 平生圖>, 조선후기[이미지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culture)”란 말은 본래 경작,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cul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연 상태의 사물에 어떤 작용을 가해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현상, 인위적인 사물 등’을 의미한다. 즉 문화라는 말은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총체를 뜻하면서, 본래의 의미와 가치가 사회문화적 변동 과정에서 변화되는 것을 전제한다. 한류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한식 수요와 급속한 세계화로 인한 디아스포라(Diaspora,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사는 사람, 이주를 뜻하는 말로 통용) 시대에 한식문화를 포괄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이 저서 《미식예찬(Physiologie du gout)》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준다. 한식문화를 바라볼 때, 음식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한식을 둘러싼 우리의 의식주 생활문화의 총체로서 이해하는 관점이 현재 통용되는 한식문화의 의미에 가깝다.
전통문화는 한 국가의 문화 정체성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관광이나 콘텐츠 같이 관련된 산업을 통한 경제적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음식문화는 일상생활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매개적 특징이 있어서, 세계 유수의 나라마다 국가 브랜드 관리 차원 또는 산업적 측면에서 자국 음식, 음식문화를 세계화하는 노력을 규모 있게 진행해 왔다.
태국은 음식산업과 농업이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Thailand Kitchen of the Worl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범정부적 차원의 지원사업으로 자국 음식문화를 육성, 세계화해 왔다. 2007년부터 시행한 “타이셀렉트(Thai Select Certification)”는 정부가 인증한 태국 음식점의 자격을 뜻하며 태국 요리 기준에 부합하는 메뉴 구성, 원재료 조건 등을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태국 레스토랑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면서, 이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전통문화산업을 현대의 기술과 결합한 ‘신일본양식’을 추진하면서 일식문화를 통한 대외적 문화이미지를 만드는 정책을 강화해 왔다. 일식당의 경우 ‘일본 스타일’을 일관되게 느낄 수 있도록 인테리어, 건축설계, 디자인, 식기, 음식, 유니폼 등의 기준을 제공했다. 특히 ‘쿨재팬(Cool Japan)' 정책은 2011년부터 장기간 정부, 공공기관, 민간이 참여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되며 일식 및 식문화의 매력을 보급한다는 기치 아래 국외 일식당과 요리학교 지원, 요리사 육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추진하고 있다.
쿨재팬 로고(출처: cao.go.jp), 타이셀렉트 로고(출처: www.thaiselect.com)
프랑스 미각주간(출처: www.legout.com), 이탈리아 슬로푸드 캠페인(출처: www.slowfood.com)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음식문화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온 대표적인 국가로 ‘미각주간’으로 대표되는 사업을 통해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접근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각주간’은 젊은 세대에게 프랑스의 식문화를 알리는 목적으로 진행하는 식문화 행사로 유치원, 초등학교 수업에서 미각 수업, 미각 아틀리에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탈리아는 음식문화 진흥을 위해 자국 식문화의 특징과 부합하는 식문화의 경향인 슬로푸드(Slow Food) 운동과 밀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지중해식 식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과 관련해 음식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면서 외국인에게도 체계적인 양성 교육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자국 음식의 세계화를 지속해왔다.
한국 대표 연상 이미지 조사에서 한식은 항상 상위에 손꼽힌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0). 그만큼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관점에서도 한식은 관심을 가질만한 자원이다. 우리나라가 정책적으로 한식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2005년 “한브랜드화 전략”과 이를 토대로 한 2007년 ‘한스타일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한식을 비롯한 6대 고유문화를 선정하고 산업적 측면에서 한식분야를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갖추기 시작했다.
2020 권역별 한국 연상 이미지 워드 클라우드 세계지도 [출처: 해외한류실태조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0]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식 세계화를 목표로 식품 및 외식산업 측면에서 한식당 수, 농식품 수출액 등을 육성 관리하면서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을 해왔다. 2010년 이후에 들어서는 한식에 대한 문화적인 관점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문화, 관광과 연계해 한류의 확산과 함께 한식을 홍보하는 노력이 진행되었고 유관기관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 정책협의회가 발족하기도 했다.
한식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본격화된 이후, 산업진흥과 문화부흥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으며 진행되어 온 한식 정책은 2019년「한식진흥법」제정을 계기로 산업과 문화 양측면에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2019년「한식진흥법」제정과 2020년 시행령 발표를 통해 한식의 국내외 확산을 위한 홍보사업의 필요성과 산업과 연계해 한식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공통의 비전과 한식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
2021 해외 한식당 물품 개발 사업 결과물[자료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여러 나라의 사례와 그간의 경험을 살펴보면 한식은 음식이나 식품 자체보다는 생활문화 관점에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한 나라의 식문화가 세계에 확산하는 과정에는 외국인, 즉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점을 고려하는 것이 핵심 요소가 되어 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입장에서 경험이 호감으로 이어지고, 그 일부가 일상에 체화되면 다른 문화는 곧 나의 문화가 되기도 한다.
2022 한식문화홍보 캠페인 진행 모습[자료제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식문화를 바라볼 때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관점을 가지고, 수용자 입장에서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를 갖추고, 체계적으로 홍보하는 활동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분야를 망라하는 세계적인 K-트렌드와 한식의 매력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한식은 전성기를 맞은 듯 보이지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체계적인 한식의 이미지와 브랜드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대의 트렌드에 맞게 국내외 동향에 대한 빠른 포착과 대응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유한 자원과 연계된 인프라를 활용해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는 방안을 지속해서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다.
표준국어대사전, ‘한식’ 정의
식품산업진흥법, ‘전통식품’ 정의
한식에 담긴 전승문화적 논리와 지식 그리고 가치, 배영동, 2016
한식문화 진흥 및 확산을 위한 중장기 전략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문체부, 2017
해외한류실태조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0
쿨재팬 로고(www.cao.go.jp)
타이셀렉트 로고(www.thaiselect.com)
프랑스 미각주간(www.legout.com)
이탈리아 슬로푸드 캠페인(www.slowf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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