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공감

[가을 한식이야기] 나주임씨 대종가 제례음식 이야기(2-2)
 

셋째, 3열에 진설한‘탕’을 들 수 있다. 탕이 나타나지 않는 고례(古禮)와 달리 오늘날의 조상제사에서 탕은 주된 제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탕 자체보다도 개수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대과급제 5탕, 양반 3탕, 서민 단탕’이라는 식으로 탕의 개수에 따라 가문(혹은 해당 조상)의 품격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안동지역 불천위제사의 경우, 우모린(羽毛鱗) 원칙에 입각하여 닭을 이용한 계탕, 쇠고기로 만든 육탕, 각종 생선과 해물이 들어간 어탕을 올리고, 경우에 따라 두부로 만든 소탕을 차리기도 한다. 또한 단탕을 따른다면 육탕과 어탕을 한 그릇에 담고, 3탕이라면 계탕, 육탕, 어탕을 각각 진설하며, 5탕의 경우에는 계탕, 육탕, 어탕, 조개탕, 소탕을 차린다.
 
실제 탕은 으레 국물이 있는 탕을 말함인데, 나주임씨 대종가에서는 제상의 3열에 제육탕, 상어탕, 병어탕, 조기탕, 민어탕이라 하여 국물이 없는 5가지의 ‘마른 탕’ 을 올린다. 각각의 생선은 생것을 미리 사서 소금에 절인 뒤에 3~5일간을 말린 다음에 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에 오목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알고명을 얹고 뚜껑을 덮는다. 제육탕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역시 오목한 제기에 담고 그 위에 알고명(지단)을 얹고 뚜껑을 덮는다. 이렇게 5가지 탕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서 노종부는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라고 말할 뿐이지만, 이는 예전 전통방식 그대로 모시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탕의 숫자를 가문 위세의 척도로 삼는 경향을 생각한다면, 나주임씨 대종가 또한 5탕이 가장 으뜸으로 여기기 때문에 진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제물을 사당으로 운반하기 위한 편의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넷째, 특이 제물로 ‘7갈납’이라 하여 제상의 4열에 어적 4(상어, 민어, 조기, 병어), 어전1, 육전1, 제육1 총 7가지를 놓는다. 어적으로 올리는 상어, 병어, 조기, 민어는 탕으로 올린 방식과 거의 똑같다. 생것을 소금에 절여 3~5일간 건조하여 찐 뒤에 빨리 깨를 뿌리고 적절한 크기로 토막을 내서 제기에 담고 알고명을 올린다. 그리고 제육은 돼지고기를 찐 것이며, 어전은 명태를 얇게 포를 떠서 달걀을 입힌 뒤에 기름에 부쳐서 제기에 놓는다. 갈납의 연원은 오래되었으나 적류나 전류의 제수를 일컫는 것으로 총 7가지를 놓는다는 점에서 가지 수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다섯째, 헌다례 때 ‘차(茶)’를 올리는 점을 들 수 있다. 『사례편람』과 『격몽요결』 등에는 “차는 중국에서 쓰는 것이고 우리나라 풍속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차를 준비하거나 따른다는 내용은 모두 삭제했다”라고 명시해두는가 하면, 대이수(代以水, 물로 대신한다) 혹은 “차 대신에 물(熟水)을 올린다”라고도 하였다. 경북지역에서는 진다(進茶), 봉다(奉茶), 진숙수(進熟水), 봉진다(奉進茶), 헌다(獻茶), 진반다(進飯茶)라 하여 차 대신 물로 바뀌었지만 절차의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나주 임씨 대종가에서는 뒷산에서 직접 기른 차나무에서 딴 찻잎을 발효하여 만든 발효녹차를 올린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노종부가 직접 재배하고 덖어서 만든 차를 지금도 올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제례의 전통이 오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례현장에서 차를 올린 뒤에 차에 밥을 마는 점다(點茶)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여느 제사에서 흔히 보는 숭늉을 올린 뒤에 숟가락으로 밥을 세 번 떠서 물에 마는 방식과 혼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멧진지상’을 들 수 있다. 멧진지상은 평소 먹는 식사 그대로를 차려놓는데, 보통 7첩 반상이라고 한다. 제물은 여느 제물보다 작은데, 뚜껑이 있는 작은 놋그릇에 각각의 제물을 담아서 제상에 올린다. 여기에 올리는 제물은 메, 갱 외에 물김치, 숙주나물, 세발나물, 김자반, 고사리나물, 어전, 육전, 김, 장, 조청 등을 차려놓는다. 이 멧진지상에 올리는 제물은 실제 살아계신 어른에게 올리는 밥상과 흡사하다. 그래서 평소에 드신 음식으로 제물을 장만한다. 마치 제상 위의 별도의 상차림처럼 차려놓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보통 나물류, 탕류, 전류를 제상에 진설하는 것과 별도의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차림은 나주임씨 대종가만의 제의적 전통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상에 올리기 전의 멧진지상
<제상에 올리기 전의 멧진지상>
 

일곱 번째, ‘밥식혜’를 들 수 있다. 나주임씨 대종가에서는 밥식혜를 ‘마른식혜’라 부르기도 하는데, 식혜를 만든 뒤에 끓이지 않고 밭아놓은 밥을 제기 위에 소복하게 담고, 그 위에 육포 6조각을 올려 장식한다. 예전에는 육포 대신 대추를 사용하기도 했다.

 

밥식혜
<밥식혜>
 

여기서 ‘식해’와 ‘식혜’가 구분되어야 하는데, 식해의 해(醢) 는 생선+소금이고, 여기에 밥을 섞은 것은 식해(食醢)라 한다. 생선, 소금, 곡물, 엿기름으로 만든 식해에서 생선과 소금을 빼고 곡물, 엿기름에 물을 많이 넣어 만든 것이 ‘감주’이며, 여기에 유자나 석류알을 넣어 산미가 감돌게 한 것을 ‘식혜(食醯)’라 한다. 이 식혜가 언제부인가 식해(食醢)와 혼돈되면서 식해 대신 밥알만을 건져서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안동지역에서는 ‘밥식해’라 하여 대체로 밥을 엿기름에 삭혀놓고 그 위에 대추 또는 계란지단으로 장식한 것을 주로 올리지만 이외에 깨소금 간장으로 비빈 밥, 고기식해로 소고기 정육회를 쓰기도 한다. 암튼 식해는 밥식해나

고기식해 중 하나를 반드시 마련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밥식해를 더 많이 올린다. 이렇게 안동지역 사례와 비교해 볼 때 나주임씨 대종가에서 올리는 ‘밥식혜’는 과거 밥식해나 고기식해의 잔존양상을 보는 듯 싶다. 그리고 호남지역에서는 제례음식으로 대개 감주를 식혜라 하여 올리는데, 이렇게 밥식혜를 올리는 사례를 나주임씨 대종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면’이라 하여 흰떡을 가늘게 잘라 밀가루를 묻힌 다음, 회오리모양으로 돌돌 말아서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담아서 놓는다. 또한 과(果)는 11과에서 13과로 놓는데,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수입 과일은 올리지 않는다. 심지어 생선 가운데 전어의 경우 크기가 좋은 것은 수입이 많아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나주임씨 대종가에서 으레 올리는 각각의 제물에는 다양한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나주임씨 대종가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여느 종가나 가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제는 제물에 담긴 긴긴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미영, 「조상제사를 둘러싼 이론과 실제」, 『지방사와 지방문화』 9집, 역사문화학회, 2006.
김미영, 「조상제례의 규범성과 실제성-제례 절차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51집, 한국역사민속학회, 2016.
순남숙, 「정성보다 귀한 제찬은 없다」, 『제례와 제례문화』, 한국국학진흥원, 2002.
윤숙경, 「안동지역의 제례에 따른 음식문화」,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11집,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6.
이미영·이효지, 「문헌에 기록된 식해(食醢)의 분석적 고찰」,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4집,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89.
이창현·김영·박영희·김양숙, 「종가제례음식의 편(떡)에 관한 연구」,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30집, 한국식생활문화학회, 2015.
종가제례음식 아카이브http://jongga.koreastudy.or.kr/  

 

필자 서해숙은, 
전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민속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강사로 출강하면서 사단법인 남도학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호남의 가정신앙>, <고전문학교육의 현재와 지향>, <지역민속의 전승체계와 활용>, <한국 성씨의 기원과 신화>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현대구전설화에 담긴 기억과 역사문화적 인식」, 「나주임씨 대종가의 불천위제례와 제례음식에 관한 연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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