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가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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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는 저수지나 웅덩이 또는 물이 잘 흐르지 않는 하천의 물풀이 많은 곳에 산다.(장민호․양현, 국립중앙과학관-어류정보)
머리가 뱀처럼 생긴 가물치는 민물고기치고 덩치도 크고, 잉어, 붕어 등 다른 물고기의 새끼는 물론이고 개구리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다.(<동아일보> 1976년 3월 16일자) 가물치는 ‘가물치’라는 한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의 색이 검은데 이러한 특성은 한자명에서도 드러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는 ‘加火魚’(가화어)로 되어 있지만, 이밖에도 가물치의 한자 명칭은 많다. 조선 후기에 쓰인 저자 미상의 어휘사전인 『광재물보(廣才物譜)』를 보면 ‘鱧魚’(예어), ‘蠡魚’(여어), ‘黑鱧’(흑례), ‘玄鱧’(현례), ‘烏鱧’(오례), ‘鮦魚’(동어), ‘文魚’(문어), ‘火柴’(화시), ‘頭魚’(두어)가 모두 가물치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흑(黑)’, ‘현(玄)’, ‘오(烏)’와 같이 ‘검다’는 의미의 글자가 들어있는 명칭이 여럿 보이며, 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한글로 ‘감을치’라고 하였다. 이러한 가물치의 색깔 때문에 “오동(烏銅) 숟가락에 가물칫국을 먹었나”라는 속담이 연유하였다. 이 말은 피부가 검은 사람을 두고 놀릴 때 쓰는 말인데, 피부가 그토록 검은 이유가 검은빛의 구리인 오동으로 만든 숟가락으로 몸 전체가 검은 빛을 띠는 가물치로 끓인 국을 먹어서냐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또한 가물치는 한자 이름에 ‘鱧’(예) 자도 많이 들어가는데, 그 까닭을 가물치가 밤에 반드시 머리를 들고 지느러미를 모아 북쪽을 향하는 자연스런 예(禮)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신하가 임금님에게, 제자가 스승을 향해 설 때 북면(北面), 즉 북쪽을 향해 서는 것과 통하기 때문에 예가 있다고 본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다른 물고기의 쓸개는 모두 쓰지만 오직 가물치의 쓸개가 단술처럼 달기에 단술 예(醴) 자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풀이한다.(서유구 저, 이두순 역, 2015: 91쪽)

이처럼 이름은 많지만 비린내가 심하여, 다른 물고기에 비해 조리법은 다양하지 않은 게 가물치이다. 속담에 등장하는 가물치국 이외에 가물치 요리는 가물치 곰, 가물치 회 정도가 고작이다. 가물치 곰은 병약한 사람이나 산모의 사후조리용 보양식으로 주로 쓰는데, 손정규(孫貞圭: 1896-1955)의 『우리 음식』(1948) ‘백숙(白熟)’에서 보듯이 가물치에 물을 붓고 푹 고은 뒤 베보자기에 자서 국물을 먹였다. 한편 가물치회는 술안주로 즐겨 먹었는데, 가물치의 살코기는 농어처럼 약간 붉은 빛을 띠며 민물생선 특유의 달짝지근하고 텁텁한 맛이 난다고 한다.(<동아일보> 1992년 9월 19일자) 가물치회를 만들 때는 19세기 말 밀양 손씨(密陽 孫氏: ?-?)가 지은 『반 등속(饌饍繕冊)』(일명 『반찬등속』)에서 보듯이, 가물치 살을 발라 술에 빨아서 만든다. 이와 같이 회를 떠서 막걸리 같은 술에 빨면, 가물치의 비린내와 잡내를 잡아주기 때문이다.(<동아일보> 1976년 3월 16일자) 모양이나 성질, 맛으로 인해, 가물치는 그리 귀하게 여겨지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이러한 인식은 『홍재전서(弘齋全書)』 제85권 「경사강의(經史講義)」에 실린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와 조윤대(曺允大: 1748-1813)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경(詩經)』의 ‘백화지십(白華之什)’의 내용을 두고, 정조는 잔치에 맛있는 물고기도 많은데 시인은 왜 천한 메기[鰋]와 가물치[鱧]만을 언급하였는지 물었다. 이에 조윤대가 대답하기를, 메기나 가물치같이 아주 하찮은 물고기까지 상에 올랐으니, 맛있는 물고기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차려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잔치 음식이나 밥반찬으로는 하찮게 여겨지는 가물치였지만, 조선시대의 효자들에게 가물치는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거나 병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줄 특별한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부모를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물치를 구하기 위해 애쓴 효자의 이야기는 문헌이나 구전으로 드물지 않게 전해진다.

 그 가운데 예를 들면,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대 경상도 상주에 살던 박언성(朴彦誠)이 있다. 그는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사람인데, 어머니께 병이 생겨 탕약을 달여 드렸으나 가물치가 그 병에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섣달인데도 얼음을 깨고 몸소 물속에 들어가 가물치를 잡아다 어머니께 드려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중종실록』 중종 13년 1518년 3월 26일 기사) 정조 대 효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조재성(趙材成) 역시 아버지가 병이 들었는데, 땀을 내야 나아지는 병이고 가물치 삶은 물을 먹어야 땀이 날 거라는 의원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한밤중에 이웃집을 찾아가 가물치를 얻어왔다는 일화가 효행으로서 보인다.(『일성록(日省錄)』 정조 20년 1796년 12월 29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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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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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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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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