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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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이 담그는 계모>

전에 한 집에, 각시가 죽고 재취로 얻었는데, 본실에 아~(아이)가 아홉 살을 묵더란네. 아홉 살을 묵었는디, 죽고 재취로 얻었더란네. 재취로 얻은께 야닯(여덟)살 묵는 머시마(사내아이)로 한나 데리 왔더란네. 오더니 미처 장醬을 한 동우(동이) 담더란네.
[청중: 각시가?]
하모(그럼). 각시가 오더니 미처 장을 한 동우 담더란네, 그리서 서방 말이,
“이 장해도(장만 해도) 묵어샀컸는디(먹고도 남겠는데), 뭘라 장을 담는고?”
이런께,
“식구가 둘이나 보태는데, 그 장 가이(가지고) 묵으끼요?”
그러더란네. 그리서 인자 본께, 본실의 머시마한테 서방이 본께, 참 잘 허는데, 우쩐지 아~가 자꾸 피물건(핏기) 없이 몰라(말라) 가고, 몰라 가고, 기운이 없고,
[청중2: 영감아들이?]
음. 영감아들이.
[청중: 예비진단 예비진단: 야위어진다는. ‘예비다’는 ‘야위다’의 남해 지역말이다.
 그 말이제.]
그리서 아~가 보몬.
‘인자 온 사람이 참 잘허는디, 우쭈 저리 몰라가는고?….’
싶어서 인자. 저거 친구가 한나 왔더란네. 그리,
“아! 친구 이 사람아, 우리는 저 사램이 와서 이거한테 그리 잘하는데, 아~가 와 이리 몰라 가겄는고?”
이런께,
“친구 집에 장을 몇 동우 담는고?”
묻더란네.
“장을 본실에는, 본 할뭄 있일 때는 장을 한…. 이 사람 와서 한 동우 더 담대.”
그런께,
“그러몬 장을, 그걸 한번 부어 보게.”
이래. 장을 부은께 비상을 요리 싸서,
[청중: 오우~]
장동우(간장동이) 밑에다 옇어놓고, 그 장을 갖고 본실에 머슴아로 그리 믹있더란네. 그런께 머슴아,
[청중3 : 뭘 옇어여?]
[청중들 : 비상! 비상!]
비상! 그리 갖고 본실의 머슴아만 그리 믹이여.
[청중 : 비생(비상)이라 쿠는 기, 아~로 몰룬다(말린다). 몰라.]
[청중2 : 독훈(독한) 거 아인가?]
몰라 직일라꼬 그러는 기라.
[청중2 : 아이구~! 지독헌 년.]

<두 동이 담그는 계모> 이야기는 간장에 얽힌 이야기다. 한 집에서 본처가 죽고 재취를 보았는데, 오자마자 계모가 간장 두 동이를 담갔다. 그러자 본처의 아이가 핏기 없이 말라갔다. 친구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집에 가서 간장을 부어보라고 했다. 간장을 부어 보았더니 간장 속에서 비상砒霜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간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근 뒤에 그 즙액을 달여서 만든 장으로, 예로부터 간장 담그는 일은 가정의 중요한 연중행사로 여겨, 메주만들기·메주띄우기·장담그기·장뜨기 등의 행사가 초겨울부터 이듬해 초여름까지 계속되었다. 간장 맛이 좋아야 음식 맛을 낼 수 있다 하여, 장을 담글 때는 반드시 길일을 택하고 부정을 금하였으며, 재료의 선정 때는 물론이고 저장 중의 관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간장은 고구려고분인 안악삼호분(安岳三號墳)의 벽화에 우물가에 장독대가 보이고, 『삼국사기』에는 683년(신문왕 3)에 왕비 맞을 때의 폐백품목으로 간장과 된장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이미 장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는 1018년(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여 명에게 쌀·조·된장[豉]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점은 이미 장류가 필수 기본식품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록(要錄)』, 『주방문(酒方文)』, 『시의전서(是議全書)』 등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대부분 간장제조법을 적고 있으며, 『산림경제』에도 25조목의 조장법(造醬法)이 보인다. 『증보산림경제』에 수록된 장 담그는 법을 보면 “메주 한 말, 소금 여섯 내지 일곱 되, 물 한 통으로 하되 가을·겨울간에는 이보다 적게 하고, 늦은 봄에는 이보다 많이 한다. 메주는 잘 띄워서 다시 소금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쓰고, 항아리에 먼저 대나무로 겅그레를 만들어 그 위에 메주를 얹어놓고 끓여 식힌 소금물을 붓는다.”라고 하였다.

개화기 이후, 일본간장과 된장이 도입되었고, 간장제조회사가 1930년대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각 가정에서는 여전히 우리의 재래식간장을 사용하였다. 그 뒤에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시판하는 간장을 사용하는 가정이 늘게 되어, 1980년 현재 공장 공급 비율이 전체소비량의 약 30%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작자
(사)한국음식인문학연구원
집필자
(사)남도학연구소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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