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추어탕(鰍魚湯)은 미꾸라지로 끓인 국을 뜻한다. 추탕(鰍湯)이라고도 하는데 190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추어탕이 아닌 추탕이라고 불렸다. 현대의 추어탕은 통째로 끓이는 것과 삶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것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주로 서울식 추어탕이라고 하면 통째로 끓이는 것을 뜻하며 전라도나 경상도의 추어탕은 갈아서 끓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꾸라지로 끓인 국’이라는 현대의 정의와 달리, 처음부터 추어탕에 미꾸라지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꾸라지와 비슷한 ‘미꾸리’라는 민물생선도 추어탕 재료로 사용되었다. 둘의 차이점을 구분하자면 우선, 미꾸라지는 얕은 강에서 서식하는 한편 미꾸리는 진흙 속에서 산다. 형태를 보면 미꾸리에 비해 미꾸라지가 색이 진하고 크기가 큰 편이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추탕집의 경우는 미꾸라지와 미꾸리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 가정에서는 야생에서 잡은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였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전래된 미꾸라지 양식법이 한국의 농가에 보급되면서 이후에는 양식 미꾸라지를 사용한 지금의 추어탕을 먹게 된 것이다(『식탁 위의 한국사』). 중국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 고려 개경에서 한 달간의 체류한 경험을 바탕을 썼다고 알려진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의 가난한 백성들이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고 하며 해산물의 이름을 열거하였는데, 그중 鰌(미꾸라지 추), 즉 추어가 있다. 미꾸라지는 주로 논이나 늪처럼 진흙이 있는 곳에서 서식하는데 서식 환경과 그 모양새 때문에 고급 식재료로 취급받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조선시대 문헌에서 미꾸라지는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 혹은 간신과 같은 비열한 인물 등을 비유할 때 사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숙종 6년(1680년) 2월 25일의 내용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대사간(大司諫) 이하진(李夏鎭:1628-1682)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은둔하고 있는 우찬성(右贊成) 윤휴(尹鑴, 1617-1680)의 복직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때 아첨을 하거나 간교한 행동을 하는 인물을 빗대 미꾸라지와 드렁허리[鱔, 민물고기의 일종]등으로 빗대었다. 이에 대해 숙종은 이 표현이 조정 신하를 능멸하는 말이라고 하여 이하진을 대사간(大司諫)에서 진주목사로 강등시켰다. 미꾸라지 조리법에 대한 기록으로는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煮鰍(자추), 즉 미꾸라지 삶는 법이 있다. 이 책은 미꾸라지를 삶을 때 등심초[燈心, 골풀]을 쓰면 좋다고 하였다. 또 점액질이 있는 물고기[鮎魚]는 미끌거리고 비린내가 심하기 때문에 지느러미를 자르고 머리가 아래로 향하게 매달아 놓아 진흙과 침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비린내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현대에는 통으로 끓이는 추어탕을 주로 서울식 추어탕이라고 한다. 서울의 3대 추탕집으로 알려진 용금옥, 곰보추탕집, 형제추탕(현 형제추어탕) 등의 추어탕도 미꾸라지가 통으로 들어있는 추어탕을 기본으로 한다. 통으로 끓이는 추어탕의 자세한 조리법은 1924년 출판된 이용기(李龍器: 1897- 1933)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추탕(鰌湯), 미꾸라지 국 끓이는 법은 다음과 같다. 미꾸라지에 물과 소금을 넣어 해감을 시킨다. 업진이나 사태를 푹 끓여 고기는 건져내고 국물에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만든다. 두부, 다진 생강, 씨를 빼고 다진 고추, 다진 파, 고사리, 표고버섯, 송이버섯, 삶은 곱창과 양 등을 밀가루를 풀어 넣은 국물에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해감 시킨 미꾸라지를 넣어 끓이다가 다 익으면 달걀을 넣는다. 먹을 때는 후춧가루와 계핏가루를 치고 국수를 말아 먹으면 좋다. 1948년 손정규(孫貞圭: 1896-1955?)의 『우리음식』도 추탕(鰍湯)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고기와 파로 끓인 장국에 서너 번 물을 갈아가며 씻어둔 미꾸라지를 산채로 넣어 끓인다. 두부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 간장으로 양념한다. 반면 조자호(趙慈鎬: 1912-1976)는 삶은 미꾸라지의 뼈를 발라내고 고아내는 방식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조자호는 1939년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소금을 뿌려 미꾸라지의 해감을 토하게 한 미꾸라지를 소금을 쳐서 문질러 씻은 다음 푹 곤다. 다 익으면 건져서 대가리를 살살 잡아당겨서 뼈를 빼고 살은 도로 국물에다 넣는다. 두부는 지져서 썰어 넣고, 표고와 석이도 손질해서 넣는다.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간장으로 양념하고 달걀을 풀어 위에 붓고 통고추를 썰어서 넣는다. 조자호는 추탕이 자양분이 많아 약한 사람이나 어린아이에게 좋다고 하였다. 이처럼 뼈를 제거하고 끓여 미꾸라지의 형태가 없도록 조리한 이유는 미꾸라지의 형태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자호는 같은 조리법을 <동아일보> 1938년 7월 22일자 지면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끓이면 ‘보통 생선국 같고 보기에도 추탕인지 모른다’ 고 덧붙였다(<동아일보>, 1938년 7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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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
- 서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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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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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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