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찬합(饌盒)은 그릇을 여러 층으로 포개어 쌓은 형태의 운반용구이자 식사용구이다. 기본적으로 찬합은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된 그릇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구조이지만, 너비가 같은 다양한 종류의 그릇(예: 주병, 잔, 찬통 등)을 조립하는 구조도 있다. 높이는 1층인 단충찬합과 2개 이상 쌓는 다층찬합으로 나뉜다. 다층찬합의 경우 보통 3-5층이지만 10층까지 쌓는 경우도 있다. 찬합의 종류는 다양한데 쌓아 놓은 모습에서 사각기둥형, 팔각기둥형, 원기둥형 등으로 나뉘고, 쌓는 방식에 따라 서랍형, 누층형으로 나뉜다. 서랍형의 경우 다시 목궤에 집어넣어 손잡이를 달아 운반하기에 용이하게 했다. 재질은 목기가 가장 일반적이고 은, 백동, 유기, 도자, 짚으로도 제작되었다. 목재찬합은 물기 있는 음식의 수분이 침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로 옻칠을 한다. 옻칠이란 옻나무 표피에 상처를 내어 나오는 천연수지를 정제해 만든 유성도료로, 옻칠을 하면 방수성이 탁월해진다. 찬합이란 기형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다. 국내에서 확인되는 유물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목제 찬합이 신라시대 유적인 천마총과 안압지 등에서 출토되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고급 기종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저술한 『임원경제지』에서 명승지 여행을 갈 때 필요한 행장의 하나로 찬합[提盒]을 설명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준생팔전(遵生八牋)』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밝히면서 6명을 위한 음식과 식사도구들을 휴대할 수 있는 찬합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산 왜찬합이 수입되기도 하고 제작 기술이 전래되기도 한다. 조선 후기 왕실의 연향 의궤 속 饌品과 器用條에서도 찬합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헌종무신진찬의궤』(1848), 『고종무진진찬의궤』(1868) 등 여러 연향의궤에서 왕을 비롯한 왕의 직계가족의 상에는 사층왜찬합(四層倭饌榼)을 올렸다. 이 외에도 왕이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릴 때[賜饌〕에도 찬합을 이용하였다. 예를 들어 철인왕후의 산릉도감을 조성과정에서 작성된 「산능도감당낭사찬찬합발긔」(1878)에는 사층찬합 5좌와 삼층찬합 15좌에 담긴 음식 종류가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층찬합의 한 층에는 포, 장봇그니, 북어므리니, 콩자반, 감락자반, 해의자반을 담고, 다른 한 층에는 민어, 석어, 약포, 편포를 담고, 나머지 두 층에는 초약과, 초만두, 홍매화연사과, 백매화연사과, 말백자강정, 전복초, 광어, 황포, 문어국화를 담았다. 이 외에도 다른 발기에서도 낭상, 도청낭상의 관리에게는 4층찬합을 내리고, 그 아래 직급의 관리에게는 삼층찬합을 내려 관직에 따라 찬합의 층수를 구분해 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구혜인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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