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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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은 밥과 술을 판매하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전근대 시기의 술집 겸 음식점 혹은 이것을 겸한 숙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근대 시기 주막의 한 형태는 주사(酒肆) 주가(酒家) 주포(酒舖) 등으로 불리던 곳으로 음식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술과 안주를 제공한 곳이다. 이런 형태의 주막은 주로 서울 개성 평양 등 도시에 있었다. 조선 후기 서울의 주사 주가 주포의 모습은 신윤복(申潤福: 1758-?)의 그림〈주사거배(酒肆擧盃)〉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대청마루에 부뚜막을 만들고, 주모가 손님에게 술과 안주를 판매했다. 18~19세기 문인들의 글에 서울의 청계천 근처에 있던 주사, 주가, 주포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서울의 주막이 성업했음을 알 수 있다. 주막의 다른 형태는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여 숙박을 목적으로 하면서 음식과 술을 제공한 곳이다. 이들 주막의 입구에는 깃발에 술 ‘주(酒)’자를 쓴 주기(酒旗) 혹은 주패(酒旆)와 같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교통 요지에 있던 주막은 16세기 중반까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주요 도로의 원(院)에 세워진 숙박업소 겸 음식점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원이 여점(旅店), 야점(夜店), 점막(店幕), 여막(旅幕), 주막 등으로 불리는 사설 숙박업소 겸 음식점으로 대체되었다. 김홍도(金弘道: 1745-?)의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중에 나오는 ‘반촌점(飯村店)’이란 그림에는 마을과 마을 사이 길목에 있던 ‘점촌(店村)’의 주막 모습이 그려져 있다. 18세기 이래 장시(場市)가 활발하게 열리면서 읍치 바깥이나 대로(大路)의 교차로에는 주막 거리가 형성되었다. 주막 거리에는 밥집과 술집, 그리고 각종 장인들의 작업장과 상인들의 임시 점포인 가가(假家)가 자리를 잡았다. 읍치 바깥에서 열린 장시 근처에는 술집, 밥집, 숙소를 겸한 주막이 있었다. 1909년 12월 조선통감부 경시(警視)로 재직하고 있던 일본인 경찰 이마무라 도모에(今村鞆, 1870~1943)는 주막이 교통 요지, 시가지, 읍치, 선착장, 시장은 물론 산각벽지에도 있다고 밝혔다. 주막에서는 탁주, 밥, 반찬을 제공했다. 반드시 밥값과 술값은 받았지만 숙박료는 받지 않았다. 만약 손님이 음식이나 술을 먹지 않고 잠만 자겠다고 하면 공간이 있을 경우 무료로 재워 주었다. 주막의 운영자는 주모(酒母)라고 불리던 부인이었다. 주사 주가 주포 같이 술집 전문의 주막 주모는 주로 현직에서 물러난 늙은 기생이었다. 그러나 경제 사정의 어려움 때문에 양반가 부인이 안채에서 음식과 안주를 만들어 하인을 시켜 바깥채에 내보는 방식의 내외주점(內外酒店)도 있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주영하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문학]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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