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돼지편육
돼지편육 이미지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돼지고기는 왕실이나 민간을 막론하고 그다지 즐기는 육류가 아니었다. 그나마 돼지고기를 먹는다 해도 집에서 키운 돼지가 아니라 주로 사냥하여 잡은 멧돼지고기[野猪肉]였다. 돼지를 가축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음식찌꺼기는 물론 콩과 밀기울[麥麩], 술지게미 등이 많이 들었는데, 사람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잔치와 중국 사신의 접대, 크고 작은 제사 때에 돼지고기는 빠뜨릴 수 없는 식재료였다. 제사 때에는 생돼지고기나 저육탕(猪肉湯)을 제수로 쓰기도 하지만, 삶은 돼지머리가 상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돼지머리로 만드는 수육은 ‘저두숙육(猪頭熟肉)’, ‘저두편[猪頭片]’이라고 하였는데, 돼지고기로 만드는 수육[猪肉熟肉]이나 편육[猪肉片], 쇠머리편육과도 색다른 맛이 있어 궁중에서도 잔치 등에 즐겨 사용하였다. 돼지머리로 만든 편육을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 『농정회요(農政會要)』에서는 ‘저두(猪頭)’라 하고 있다. 편육을 만드는 방법은 일단 돼지머리를 물에다 넣고 삶아서 익힌 후 잘게 썰어서 설탕[砂糖], 장(醬), 분디[花椒] 등을 고루 섞고 중탕으로 푹 무르도록 쪘다. 그런 다음에 뼈를 제거하고 한 덩어리로 만들어 단단히 묶고 큰 돌로 눌러서 돼지머리 편육을 만들라고 하였다. 손정규(孫貞圭: 1896-1955)의 『우리음식』에도 ‘돼지대가리편육’이라 하여 돼지머리 편육을 소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돼지머리를 양념이나 중탕하는 일 없이 그저 흐물흐물하게 삶아서 뼈를 골라내고 보자기에 싸서 눌러두었다가 썰어 내었다. 또한 쇠머리편육도 이렇게 만들지만, 소머리보다 돼지머리 편육이 연하고 좋다고 하였다. 한희순 등의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中料理通攷)』(1957)를 보면, 제육편육은 돼지고기 삼겹살을 삶아서 보자기에 싸서 도마 같은 것으로 눌러 단단하게 만든 후 얇게 썰어 초장, 겨자, 새우젓과 곁들여 먹는데, 삶은 돼지곱창을 썰어 고명으로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육은 국수로 차리는 면상(麪床)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면상에 편육을 함께 올리기 때문에, 이용기(李用基: 1870-1933)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을 보면 사람들이 국수로 대접받으면 밥보다 잘 대접받았다고 여기는데, 상에 편육 한 접시라도 올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국수 대접은 손님 대접 중에서 나은 것이라 하였다. 또한 돼지고기나 쇠머리편육을 올릴 때에는 새우젓을 꼭 짜서 체에 거른 것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초젓국에 찍어 먹으라고 하였다. 한편 돼지 족으로 만드는 족편(足片)도 있다. 대부분 족편은 우족(牛足)으로 만들지만 돼지 족으로 만든 족편이 조선 고종(高宗: 재위 1863-1907) 때에 지어졌다는 저자 미상의 『음식방문』에 보인다. 만드는 법은 우족편을 만드는 법과 거의 동일한데, 돼지 족을 살짝 끓여서 건져내어 털을 깎고 깨끗이 씻은 다음, 물을 많이 붓고 끓이다 물이 반 정도가 남으면 닭, 꿩, 돼지고기도 같이 넣고 엉길 때까지 곤다. 그런 다음 돼지 족을 건져 잘게 자르고 생강, 후춧가루, 파로 양념한다. 족과 양념이 닭, 꿩, 돼지고기와 서로 잘 엉기게 한소끔 끓인 후 그릇에 담고, 여기에 가늘게 채 썬 계란 지단과 잣가루를 넣고 저은 후 찬 곳에 두었다가 굳으면 썰어서 초간장과 같이 내라고 하였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김혜숙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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