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탕 이미지

오늘날 탕(湯)은 대체로 건더기가 많은 국물음식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탕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향약(香藥)을 끓여서 마시는 것도 ‘탕’이라고 적었다.

그러므로 서유구가 생각했던 탕은 국물음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음료처럼 마실 수 있는 음청류(飮淸類)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는 『임원경제지』에서 탕을 차(茶), 숙수(熟水: 약재 등을 끓인 물에 우려낸 음료), 갈수(渴水: 약재와 꿀을 넣고 달인 음료) 등과 함께 음청류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한편,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쓴 『음식디미방』이라는 고조리서에서는 탕을 국물음식으로 분류하였다. 이 책에서는 모시조개탕, 가막조개탕, 자라로 만드는 별탕, 고기를 석류알 만큼씩 빚어 장국에 넣어 끓인 석류탕, 난탕, 계란탕과 같이 건더기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탕이라고 보았다
. 이와 같은 기록으로 유추해보건대, 조선시대에는 음청류(飮淸類)로서의 탕과 국물음식으로서의 탕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유교식 제사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국물음식으로서의 탕이 보다 강화되었다. 그 이유는 유교식 제사상에는 반드시 3탕이라고 하여 육탕 어탕 소탕, 혹은 육탕 어탕 계탕을 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나 사회에 큰 공을 세워 불천위(不遷位)로 인정받은 조상의 제사는 훨씬 성대하게 치렀으므로 3탕이 아닌 5탕을 올리기도 하였다. 제사상에 진설하는 탕은 대개 한꺼번에 만든다.
3탕, 혹은 5탕의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푹 끓여서 국물이 우러나면, 각각의 탕기 안쪽에 무를 깔고 그 위에 주재료를 얹는 방식으로 진설한다. 2005년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서애 류성룡의 불천위 제사를 중심으로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애 류성룡의 불천위 제사에는 계탕(닭), 소탕(다시마), 어탕(명태), 육탕(소고기), 해물탕(오징어), 이렇게 5기의 탕을 올린다. 탕을 만들기 위해 먼저 재료를 손질한 다음, 커다란 냄비에 닭, 다시마, 명태, 소고기,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고 물을 붓고 끓인다. 국물이 한소끔 끓으면 오징어를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그런 다음, 무를 건져 탕기에 담고, 그 위에 각각 닭고기, 다시마, 명태, 소고기, 오징어를 담아서 진설하였다(국립문화재연구소, 『종가의 제례와 음식 8』)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양미경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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