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전약(煎藥)은 조선시대 명나라와 청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조선의 약이다. 전약은 대추 생강 정향 후추 등과 같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재료만 모아 만들어졌다.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전약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백강 5냥, 계심 1냥, 정향과 후추 각 1냥 반을 각각 가루로 만든다. 큰 대추를 쪄서 씨를 발라내고, 살만 취해서 진득진득하게 고아 여섯 되 정도 만든다. 아교와 골을 달인 것도 각각 아홉 되 정도를 준비한다. 먼저 아교를 녹이고, 다음에 대추의 살과 꿀을 넣어 충분히 달인다. 체에 밭쳐서 내린 후에 그릇에 담아둔다. 덩어리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쓰면 매우 좋다.” 『동의보감』의 전약 만드는 방법을 보고서 왜 아교가 재료로 쓰였는지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교는 짐승의 가죽이나 힘줄 혹은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물질을 가리킨다. 아교는 각종 약재와 대추 그리고 꿀과 같은 부드러운 성질의 재료를 딱딱한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보통 아교를 만드는 데는 소가죽이 많이 쓰였다. 1769년(영조 45) 4월 25일에 영조는 의관들에게 전약의 아교에 대해서 물었다. “내국에서는 아교 달이는 일을 일 년에 몇 차례 하는가?” 그러자 장무관(掌務官)이 봄과 가을에 두 차례 한다고 답했다. 영조가 아교는 무엇에 사용하는지 묻자 전약에 들어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혹시 전약의 폐단은 없냐고 묻자 장무관은 대단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소를 희생하여 그 가죽으로 전약의 아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폐단이 없지 않았다. 조선 시대 정향과 후추는 수입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귀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구하기가 어려웠고, 임금을 위해 마련하는 음식에만 주로 쓰였다. 전약은 동지 즈음에 임금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서 개발된 음식이다. 향신료로 들어가는 정향 육계 후추 등이 모두 몸속의 기운을 데워주는 약리 작용을 하였다. 더욱이 오랫동안 저장하기도 좋아서 조선을 다녀간 청나라와 일본 사신들 사이에서도 전약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청나라에 사절로 가는 조선사신들 짐 속에도 반드시 전약이 들어 있었다. 전약으로 그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조선의 관리들이 임금으로부터 추운 겨울에 전약을 선물 받으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것으로 여겼다. 전약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찾는 사람 또한 갈수록 많아졌다. 그로 인해 값비싼 향신료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은 들어가는 재료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집집마다 양봉을 하면서 꿀 생산량이 많아지자, 대추를 고아 넣는 대신에 꿀이 많이 들어갔다. 육계도 품질이 좋은 계심보다는 값싸면서도 향이 강한 관계(官桂)를 많이 넣었다. 물론 정향이나 후추의 양도 줄어들었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단맛과 계피 맛만이 강한 음식으로 전약이 쇠락하였다. 홍경모(洪敬謨)의 『기사지(耆社志)』(1849)에도 전약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기로소에 든 기로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전약도 꿀이 많이 들어가고 관계를 넣은 전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로소에 들 나이는 아니었지만, 영조에게는 동지에 반드시 전약이 바쳐졌다. 영조의 나이 35세 때인 1728년(영조 4) 11월 21일에 전약이 올려졌다. “권익순(權益淳)이 보고하기를 내의원 장무관(掌務官)이 말하기를 오늘 동지절일(冬至節日)이라 새벽에 전약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세 명의 제조가 아직 그 글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결코 거행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영조는 대비전에도 올려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어제 왜 그런 보고를 하지 않았냐고 나무랐다. 그리고 바로 전약을 올리라고 지시하였다. 영조는 초가을에도 전약을 복용하였다. 전약 외에도 타락죽 제호탕(醍醐湯) 납약(臘藥, 내의원에서 만든 청심원(淸心元) 안신원(安神元) 소합원(蘇合元)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등이 겨울에 조선 왕실의 건강을 지킨 약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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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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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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