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잡채는 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를 가늘게 썰어 볶아서 섞은 음식이다. 이때 양념은 간장, 기름으로 양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겨자양념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현대에는 당면을 주재료로 하며 부재료로 채소와 고기가 들어가며 양념에는 간장, 참기름, 설탕 등이 사용되는 형태로 굳어졌다. 잡채에 관한 조선시대의 기록으로는 별미(別味) 음식으로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의 환심을 샀던 이충(李冲)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의 1608년 12월 10일 내용에 따르면, 이충은 겨울에 큰 토굴을 만들어 채소를 길렀는데, 이를 반찬으로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광해군에게 올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충은 왕의 총애를 얻어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는데, 사람들이 잡채 판서(雜菜判書)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의 인조 2년(1624) 4월 4일의 내용에도 음식으로 광해군에게 아첨했던 벼슬아치인 최관(崔寬, 1613-1695)과 이충을 빗대어 “이충의 잡채, 최관의 국수[李冲之雜菜, 崔瓘之麪]”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잡채 조리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시대별로 식재료의 변화에 따른 차이가 드러나는데, 이를 대략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로 갖가지 채소와 고기로 만든 문자 그대로의 잡채가 있었다. 다음 시기는 20세기 초로 잡채에 당면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두 번째 변화가 나타났다. 세 번째 변화는 1930년대 이후의 경향으로 잡채에 사용된 양념에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 변화는 최근 수십년 간의 일로, 잡채의 재료 중 당면의 비율이 급증하였다. 당면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19세기 말경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잡채에 당면을 넣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의 『음식디미방』의 잡채의 재료를 살펴보면 오이채, 댓무, 참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숙주나물, 도라지, 겨여목, 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리, 당귀, 동아, 가지, 꿩고기 등의 잡채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갖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념은 생강, 후춧가루, 참기름, 진장, 천초가루 등을 사용했는데 이와 함께 밀가루를 물에 풀어 장을 섞어 만든 진말국을 뿌려 걸쭉하게 만들었다. 저자 미상의 1896년 조리서인 『규곤요람』의 잡채의 재료는 숙주나물, 미나리, 곤자소니, 소 위, 파, 소고기 등이었으며 달걀지단 채친 것과 잣가루를 고명으로 쓴다. 양념으로는 겨자를 사용하였다. 반면 20세기 초 이후에 출판된 조리서들의 조리법을 살펴보면 잡채에 당면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1921년의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의 잡채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도라지를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불려서 데친 다음 또 다시 하루 쯤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꼬챙이로 잘게 뜯는다. 미나리는 소금에 살짝 절여 기름에 볶는다. 황화채는 데친다. 고기(소고기), 제육(돼지고기), 표고와 석이버섯은 물에 불려 가늘게 썬다. 다진 파, 간장, 기름, 깨소금, 후춧가루를 잘 섞어 버무려 볶는다. 물에 불린 당면을 삶아서 썰어 둔다. 손질해둔 재료를 잘 섞어서 접시에 담고 달걀지단 채 썬 것, 표고, 석이버섯 불려서 채 썬 것을 기름에 볶은 것, 잣가루로 고명을 한다. 반면 이용기(李龍器: 1897- 1933)는 1924년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잡채(雜)에 당면을 넣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였는데, 바꿔 말하면 요리책에서 잡채에 대해 당면에 대한 의견을 밝힐 정도로 이미 이 시기에 잡채의 재료로 당면이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세 번째 변화는 양념의 변화로 설탕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방신영은 1921년 『조선요리제법』의 잡채 조리법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양념인 설탕을 1934년 『조선요리제법』에서는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 조자호(趙慈鎬: 1912-1976)의 1939년의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과 1948년 손정규(孫貞圭: 1896-1955?)의 『우리음식』에서도 양념 중 하나로 설탕이 사용되었다. 한편 사용하는 장의 종류도 점점 한국식 간장이 아닌 일본식 간장으로 바뀌어 간 것으로 보인다. 1930년의 <동아일보>의 기사에는 송금선은 잡채 조리법이 실렸는데, 이때 간장은 한국식 간장과 일본장을 반반씩 섞거나 일본식 간장만으로 양념하여도 좋다고 하였다(<동아일보>, 1930년 3월 6일자). 현재 잡채에는 한식간장이 아닌 일본식 간장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는 당면이 들어간 현대의 잡채를 ‘당면잡채’로 명명하며 이를 “한 중 일 3국의 합작품”이라고 하였다. 즉 중국에서 들여온 당면과 일본식 간장과 조선인의 조리법이 합쳐져 탄생한 음식이라는 것이다(주영하, 2013). ‘당면잡채’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대의 잡채의 재료 중 당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월등히 높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까지만 해도 당면은 잡채의 주재료가 아니며 다른 재료와 비슷한 비율로 약간 첨가되었을 뿐 이었다. 손정규 외 3인이 저술한 가정과 교과서인 1948년의 『중등가사교본 요리실습편』은 “잡채 재료는 될 수만 있으면 많은 것이 좋다”고 하였는데 그 말에 걸맞게 고기만 해도 소고기, 돼지고기, 해산물, 채소, 버섯 등 20여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 잡채 조리법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조리법에서 당면의 양은 다른 재료와 동일한 1Ts, 즉 한 숟가락 정도의 양이었다. 1958년의 교과서인 방신영의 『고등요리실습』에도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각각 80g씩 사용되고 숙주와 시금치는 1컵씩 사용된 반면 당면은 10g만 사용되었는데 물에 불리면 크게 불어나는 건면임을 감안하더라도 현대 잡채의 재료 중 당면의 위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서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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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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