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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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다년생의 식물이다. 깊은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식물로 자생하기도 하며, 재배하기도 한다. 꽃은 연한 녹색으로 4월에 피며, 열매는 둥글고 적색으로 익는다. 인삼의 자생지역은 대체로 북위 30°~48°에 이르는 동북아시아이었지만, 지금은 비슷한 위도의 북미에서도 재배된다. 인삼의 뿌리는 옛날부터 강장제 또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다. 영어로 ‘ginseng’이란 말은 인삼(人蔘)이란 한자를 중국의 광둥어(廣東語)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광둥 출신의 상인들이 15세기 이래 고려인삼을 상품으로 미국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그들의 발음에 근거하여 서양에서 ‘ginseng’이란 말이 널리 퍼졌다. 인삼은 다른 말로 신이 내린 풀이란 의미로 ‘신초(神草)’라고도 불렀다. 인삼은 본래 한국어로 ‘심’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산에서 자생한 산삼(山蔘)을 전문적으로 캐는 사람을 ‘심마니’라고 부르며, 그들이 산삼을 찾으면 ‘심 봤다’라고 외친다. 인삼이란 한자어가 6세기에 중국의 양자강 이남에 설립되었던 양나라(梁, 502-557) 때 나온 문헌인 『양서(梁書)』에서부터 등장한다. 백제와 고구려에서 무역 상품으로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자생 인삼인 산삼은 한반도에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약재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역사 문헌에서 인삼을 언제부터 재배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명나라 때 사람인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조선의 인삼 재배와 상품 거래에 대해서 기록해 두었다. 정조(正祖, 1752~1800) 때 햇빛을 가리고 인삼을 재배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삼은 그 가공 여부에 따라서 크게 수삼(水蔘) 백삼(白蔘) 홍삼(紅蔘)으로 구분한다. 수삼은 말리지 아니한 인삼으로 다른 말로 생삼(生蔘)이라고도 부른다. 수삼의 경우 물기가 사라지면 썩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삼밭에서 캐낸 수삼은 보통 10℃ 정도에서 10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수삼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였다. 보통 수삼을 사서 닭고기를 끓일 때 넣어 삼계탕(蔘鷄湯)을 조리해서 여름에 보양음식으로 많이 먹는다. 아울러 수삼을 우유와 함께 믹서에서 갈아서 영양음료로 마시기도 한다. 영양이 풍부한 서구의 음료로 알려진 우유에 수삼을 갈아서 먹는 풍속은 건강을 강조하는 한국인에게는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해 주는 가장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인삼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는 백삼이나 홍삼으로 가공을 해야 한다. 백삼은 보통 4년 동안 재배한 수삼의 껍질을 벗겨낸 다음에 햇볕에 말려서 만든다. 곧게 뻗은 백삼이 높은 값을 받기 때문에 별도로 이것을 만드는 소규모 공장이 인삼 거래가 활발한 시장 근처에는 반드시 있다. 일반적으로 수삼의 껍질을 벗기면 흰 색이 되는 백삼을 만드는 곳이란 뜻으로 ‘백작소(白作所)’라고 부른다. 뻗은 백삼이란 뜻으로 ‘직삼(直蔘)’이라 부르는 것은 보통 그 크기가 20cm 이상이 된다. 이 보다 작은 수삼은 발 부분을 휘어지게 만들어 건조시키는데, 이것을 ‘곡삼(曲蔘)’이라 부른다. 백삼은 수삼을 1년 정도 보관하기 위해서 개발된 가공방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주로 차를 끓이듯이 뜨거운 물에 넣고 끓여서 음료수로 마시면 건강음료가 된다. 홍삼은 그 색깔이 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6년 동안 재배한 수삼을 물로 깨끗하게 씻고, 물을 끓인 수증기로 찐다. 이것을 뜨거운 바람에 말린 다음 수분이 12.5~13.5% 정도 남도록 햇볕에 말린다. 백삼의 경우 보존기한이 1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오랫동안 인삼을 보존하기 위해서 홍삼 가공방법이 발명되었다. 중국 송나라의 사신이었던 서긍(徐兢: 1091-1153)이 1124년에 편찬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산삼을 삶은 숙삼(熟蔘)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서 적어도 12세기 전후에 지금의 홍삼과 비슷한 가공방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이래 인삼의 재배지로 이름이 높은 오늘날 북한에 소재하는 개성(開城)에는 1810년에 홍삼을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증포소(蒸包所)가 설치되었다. 인삼재배가 대량으로 이루어지면서 개성에 증포소를 두어 홍삼을 대량으로 가공했다. 이때부터 개성은 고려인삼의 대명사로 중국과 일본 등지에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 등지로 홍삼을 수출하면서 증포소는 조선왕실에서 직접 운영을 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淸日戰爭) 이후 조선왕실의 재정을 담당했던 탁지부(度支部)에서 위탁한 상인들이 홍삼 가공을 도맡았다. 1908년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근대적인 법률로 ‘홍삼전매법(紅蔘專賣法)’을 발효하면서 홍삼의 가공과 판매는 국가에 의해서 독점되었다. 1995년까지만 해도 홍삼은 정부만이 제조할 수 있었으나 1996년부터 전매제도를 폐지하고, 개인이 일정한 시설을 갖추면 누구나 홍삼을 제조할 수 있도록 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주영하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식재료]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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