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홍석모(洪錫謨: 1781~1857)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음력 8월이 되면 서울의 “술도가에서는 신도주(新稻酒, 햅쌀 술)를 빚어 팔고, 떡집에서는 조도송병(早稻松餠, 햅쌀 송편)”을 만들어 판다고 한문으로 적었다. 송병(松餠)은 지금 말로 송편이다. 한국어 사전에서는 떡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송’ 다음에 바로 ‘병’을 발음하기가 귀찮아서 생긴 결과이다. 송편은 솔잎을 시루바닥에 깔고 떡을 안친 데서 생긴 이름이다. 어떤 떡이라도 솔잎을 깔았으면 송편이 될 수 있다. 19세기 말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글 필사본 『시의전서 음식방문』에는 세 가지의 송편 만드는 법이 나온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한자로 송병이라 적고 한글로 송편이라 적은 음식이다. “좋은 쌀을 옥같이 썰어 빻아 깁체로 쳐서 물 팔팔 끓여 가루에 부어 반죽 매우 하되 되게 말고 소는 거피팥고물 녹두고물 꿀 팥 계피 섞고 대추 밤을 소하여 넣어 얇게 파서 소를 단단히 넣어 솔 켜켜 놓아 살 닿이지 않게 넣어 안쳐 푹 쪄서 씻으되 두는 것은 솔 쳐서 더 두면 터지지 아니 하고 송편은 씻기를 여러 번 씻어 건져 물 쪽 빠진 후 기름 발라 쓰라.” 여기에서 송편을 씻으라고 한 것은 솔잎이 묻은 송편을 차가운 물로 씻으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여 말린 송편에 참기름을 발라 먹으면 맛있다고 했다. 송편 다음에 쑥송편이 나온다. “쑥 정히 골라 씻어 물 탈자〔빠지면〕 가루 넣어 다시 찧어 생반죽으로 빚나리라”고 했다. 멥쌀에 쑥을 넣어 가루를 내어 반죽하여 빚은 송편이 바로 쑥송편이다. 소로는 꿀과 계피가루를 넣어 맛을 달게 하고 후추와 말린 생강가루를 넣어 입맛을 돋우라고 적었다. 모양은 버들잎처럼 길쭉하게 빚으라고도 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음식은 송편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그 이름이 ‘어름소편’이기 때문이다. “흰 떡 쳐서 개피떡 밀 듯 얇게 밀어 숙주 미나리나 외나 채소를 갖춰 양념하여 만들은 소 넣어 개피떡처럼 송편만치 쪄 내어 다시 또 쪄서 씻어 기름을 발라 초장에 쓰라.”고 했다. 왜 그 이름이 어름소편인지는 알 길은 없다. 다만 그 만드는 법을 보면 ‘어름소’의 편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생김새 역시 개피떡처럼 반달모양으로 빚으라고 했다. 그 맛도 거의 만두에 가깝다. 하지만 송편처럼 쪄내라고 했으니 시루에 안쳐서 솔잎을 깔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비슷한 송편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나온다. 음식의 이름은 ‘각색송병(各色松餠)’이다. 이 책에는 조리법이 나오지 않고 재료와 분량만 적혀 있다. 찹쌀 1말, 멥쌀 8되, 검은콩 7되, 대추 밤 꿀 각 2되, 들깨 3되, 계피가루 1량, 미나리 1단, 숙저육(熟猪肉, 삶은 돼지고기) 8량, 묵은 닭 2머리, 표고 석이 각 2홉이 그것이다. 이 재료만으로 송편의 종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송편의 피로는 찹쌀 멥쌀, 그리고 찹쌀과 멥쌀에 검은 콩을 섞은 것 등 네 가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송편의 소는 대추 밤 꿀이 들어간 것과 들깨와 계피가루가 들어간 것, 그리고 삶은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미나리와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넣은 것 네 가지이다. 그러니 네 가지의 송편을 만들어 높이 5척으로 쌓아서 상에 차려 올렸다. 이 책은 정조가 1795년 윤 2월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지금의 수원 화성에 가서 환갑잔치를 했던 행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 네 가지의 송편은 윤 2월 10일 화성에 도착하여 점심 간식으로 나왔다. 어름소편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만두에 더 가까운 음식이다. 한반도는 여름에만 겨우 적은 양의 밀이 수확되었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피를 사용한 만두는 매우 고급 음식이었다. 그러니 조선시대 밀가루로 피를 만든 만두를 대신하여 멥쌀이나 찹쌀로 피를 만든 송편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멥쌀로 피를 만들어 양념한 채소나 돼지고기 따위를 소로 넣어서 찌면 향이 좋지 않았다. 양념이 고기의 향을 제거하기 위해 한반도의 지천에 깔린 소나무의 잎을 시루에 넣고 찌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그래서 음식 이름도 송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편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멥쌀이야 밀에 비해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지만, 소에 들어가는 재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편은 조선후기만 해도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서 8월뿐만 아니라 음력 2월 1일 중화절(中和節)에도 송편을 먹었다고 했다. 이 날로부터 농사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시골의 부잣집에서는 노비들에게 송편을 만들어 먹였다. 한양의 떡집에서도 송편을 팔았다. 다만 시골의 송편과 달리 한양의 떡집에서는 값어치를 높이기 위해서 팥, 검은 콩, 푸른 콩 따위를 소로 넣었다. 아예 이들 소를 꿀로 버무려 넣기도 했다. 또 찐 대추나 삶은 미나리를 소로 넣은 송편도 팔았다. 그래서 『시의전서 음식방문』에서는 “솔잎을 뽑아서 한번 푹 삶아 버리고 말려 두었다가 써야 떡 빛이 정하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가을에 말려둔 솔잎을 음력 2월 1일에도 사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 책에서는 3월 3일 삼짇날, 동지 후 105일째 되는 한식 때 송편을 조상제사에 올린다고 적었다. 20세기 이후 서울의 가정에서부터 추석 때 차례에 송편을 올리기 시작했고, 1960년대가 되면 전국의 많은 가정에서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추석 차례에 송편을 올리지 않았다. 또 ‘매화송편’이란 것도 있었다. 24절기의 입춘 때가 되면 선비들 사이에서 매화 꽃 모양을 한 송편을 만들어 선물로 주기도 했다. 매화는 기나긴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선비들은 절개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간혹 매화를 꺾어 마음이 통하는 동무에게 전해 절개를 다지기도 했지만, 꽃이나 나무의 가지를 자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부인에게 매화 모양을 한 송편을 만들도록 부탁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매화송편이다. 일반 송편이나 매화송편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다만 겉에 매화 모양을 내는 것이 일반 송편과 다르다. 매화송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멥쌀 1되(800g), 소금 1 큰 술, 회색 팥 3컵, 설탕 약간, 쑥 삶은 것 한줌, 소나무 껍질인 송기 삶은 것 한줌, 참기름 약간이 필요하다. 곱게 빻은 멥쌀가루를 삼등분하여 하나는 흰 송편용, 다른 하나는 쑥 삶은 것, 나머지 하나는 송기 삶은 것을 넣어 각각 한번씩 빻는다. 그러면 흰색․녹색․자주색의 세 가지 송편가루가 완성된다. 이것을 잘 익반죽해둔다. 녹두․밤․대추 등을 곱게 빻아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로 만든다. 익반죽한 것을 떼어 엄지손가락을 가운데 넣어 돌려가며 오목하게 홈을 파고 미리 만들어둔 소를 넣어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꼭꼭 눌러 아물린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날카롭지 않게 지그시 눌러서 귀를 만들어 앞으로 약간 숙이는 모양을 내면 송편은 날아갈 듯 잽싸다. 여기까지는 일반 송편과 똑같다. 여기에 매화 꽃 모양을 만들어 올려야 매화송편이 된다. 송편과 다른 색이 나는 반죽을 콩알처럼 만들어 송편 위에 올린다. 가운데에 한 개를 놓고, 둘레에는 다섯 개를 올린 후 이쑤시개로 가운데를 눌린다. 시루에 솔잎을 놓고 송편을 켜켜로 놓아 안친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 매화송편이 다 익은 것이다. 참기름을 겉에 두르고 접시에 담아내면 솔향기와 함께 매화꽃 모양을 한 송편이 ‘절개’의 빛을 발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소나무와 매화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는 선비가 본받아할 기개를 지녔고,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닮아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나무와 꽃이다. 솔가지를 바탕에 깔고 만들어내는 매화송편은 변함없는 기개와 절개를 담고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주영하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식재료]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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