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일반 가정의 제사 절차와 제사 음식은 예서(禮書)를 기준으로 실행하므로 대체로 비슷하다. 하지만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각 집마다 형식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지역의 물산(物産)이 반영되어 제사음식의 종류도 특색을 보인다. 그리하여 제사 때 어떤 음식이나 술을 반드시 올리기도 하고, 절대로 올려서는 안 된다는 지침은 집집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특히 제사에 쓰는 술 가운데 소주를 둘러싸고는 조선시대부터 의견이 분분하였다. 소주를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해 각자 주장을 펼쳤는데, 쓰면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동춘당집(同春堂集)』에는 송준길이 자신이 배웠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에게 당시 조선 풍속에 제사 때 소주를 쓰지 않는 이유와 그것이 전거(典據)가 있는 것인지 묻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장생은 소주는 원나라 때 생긴 것이라 경전(經典)에는 보이지 않지만, 태조(太祖: 재위 1392-1398)와 태조 비(妃)인 신의왕후(神懿王后1337-1391)의 위패를 모신 문소전(文昭殿)에서도 초하루 제사에 여름철이면 소주를 쓰고 있고,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또한 상중(喪中)의 조석제(朝夕祭)를 지낼 때 여름철에는 청주(淸酒)의 맛이 변하니 소주를 쓰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고 답하였다. 이와 같이 여름 제사에 소주를 쓰도록 권한 일은 김장생이나 송준길보다 이른 시기인 이식(李植: 1584-1647)의 『택당선생별집((澤堂先生別集)』에도 보인다. 그는 제사 때 마련하는 제찬(祭饌)을 설명하면서, 유두일 즉 음력 6월 15일에는 소주를 쓰라고 권유하였다. 결국 소주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가례를 행할 때 기준이 되던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송나라(960-1279) 때의 문헌이라 후대인 원나라(1271-1368)의 술인 소주가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없는 술을 제주로 써도 되는지가 조선 선비들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소주를 제주로 쓰기 꺼려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소주가 제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냉장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여름철에 탁주(濁酒)나 약주(藥酒)는 쉽게 상하였고, 쉬어 버린 술을 제사상에 올릴 수도 없는 일이라 증류주인 소주를 제주로 써왔던 것이다. 유수원(柳壽垣: 1694~1755)의 『우서(迂書)』를 보아도, 집안 제사를 모시면서 당시 사람들이 시장에서 만든 소주를 사다가 많이 쓴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소주의 사용이 제사에 금기라는 인식은 현대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지금도 소주를 사용하지 않는 집은 여전히 많다. 소주에 대한 1960년대 초반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있다. 1963년 정부는 가을의 햇곡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막걸리와 소주의 제조는 허용하지만 약주와 청주는 못 만든다는 양곡소비제한세부방침을 결정했다. 그러자 이 조치에 대해 술맛을 따지는 애주가의 입장에서 불만을 토로하기를, 제사 술로는 소주가 절대로 금기라고 여기기 때문에 약주를 못 쓰는 경우에는 차라리 ‘현주(玄酒)’라 불리는 맑은 물을 부어놓을 정도로 귀신도 술의 종류를 가리는데 산사람의 입맛은 어떻겠냐고 안타까워했다.(<동아일보> 1963년 7월 20일자) 이와 같이 1960년대까지도 곡주를 걸러 맑게 만든 약주로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았지만, 술의 생산과 소비 양상이 변화하면서 소주를 제주로 쓰는 것을 꺼리지 않는 집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렇게 소주의 사용이 증가한 것은 소줏고리를 써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가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희석식 소주가 출시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1965년 정부가 소주의 생산에 곡류의 이용을 금지하면서 값싼 희석식 소주의 대중적인 소비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띠라 1970년대 초에는 명절이면 제사용 약주(藥酒)를 사기 위해 양조장이나 술집 앞에 줄을 섰던 풍경도 사라지고,(<경향신문> 1971년 1월 7일자) 제주로 소주와 소위 ‘정종’이라 부르는 일본식 청주를 쓰는 집이 늘었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김혜숙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의례]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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