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설렁탕(「운수 좋은 날」)
설렁탕(「운수 좋은 날」) 이미지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에 모로도 못 눕는 것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중략)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하고 김첨지는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근뜨근한 듯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을 하게”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돈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 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1924년 종합잡지 <개벽>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이다.

현진건(玄鎭健: 1902-1943)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을 개척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윗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하여 일어난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 간 감옥살이를 하였다. 대표작에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고향」 등의 단편소설과, 『적도』, 『무영탑』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운수 좋은 날」의 제목 ‘운수 좋은 날’이란 주인공인 인력거꾼 김첨지의 어느 날 하루의 운수가 좋아 돈을 평소보다 많이 벌게 되었음을 뜻한다.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첨지의 거친 말과 행동은 가난하여 아내의 병을 치료할 형편이 못 되는 현실에 대한 분노,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병들어 누운 아내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 등 복잡한 심리를 담고 있다. 인물의 말과 행동으로써 이처럼 복잡한 심리를 절묘하게 담아내었으니 현진건의 뛰어난 솜씨를 확인한다. 인물의 심리를 깊이 투시하여 절묘하게 담아내는 현진건의 솜씨는 전에 없이 많은 수입을 올린 김첨지의 이후 행동을 그리는 데서도 멋들어지게 발휘되었다.

‘모주 한 잔’으로 목을 적시는 데 멈추지 않고 이 집 저 집 술집을 전전하며 술에 탐닉하고, 동료인 치삼이를 붙잡고 술주정을 하고,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분노의 말을 내뱉다가 “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자책하며 ‘훌쩍훌쩍’ 울기도 한다. 그가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공포에 짓눌려, 일을 마쳤는데도 귀가하지 않고 이처럼 술집을 전전하였다는 것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이렇게 살피면 우리는 「운수 좋은 날」이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통해 가난의 비극을 잘 그린 슬픈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슬픔의 세계 한복판에 김을 올리며 놓여 있는 설렁탕 한 그릇에 담긴 것이 또한 깊은 슬픔임은 물론이다. 우리 현대소설에는 설렁탕이 자주 등장한다.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 채만식의 『태평천하」, 손창섭의 「인간동물원초」 이범선의 「오발탄」 등에서 설렁탕은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음식점 식탁 위에 또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상상 속에 하얗고 따뜻한 김을 피워 올리고 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정호웅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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