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보리밥
보리밥 이미지

보리밥은 보리로 지은 밥을 뜻한다. 한자로 표기하면 맥반(麥飯)이라 표기한다. 보리밥에도 보리와 다른 곡물, 특히 쌀을 섞느냐 그렇지않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보리만 가지고 밥을 할 경우 꽁보리밥이라고 부르고 한자로도 순맥반(純麥飯)이라고 하여 구분했다. 보리는 고고학 발굴 등을 통해 역사 이전 시기인 청동기시대부터 한반도 지역에서 재배되어 온 곡물이지만 보리밥은 밥이라는 철의 보급과 함께 밥이라는 조리법이 보급되면서 생겨난 음식이다. 각 곡물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곡식을 가지고 만든 밥에도 투영되는데 곡식 중 가장 귀하고 좋은 밥은 쌀밥, 특히 흰쌀밥이었고 보리밥은 이보다 한단계 낮은 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보리밥의 지위가 쌀밥 보다 낮다고 인식된다고 해서 생활 속에서 지니는 중요성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어려운 시기를 상징하기는 하지만 그 단어를 뒤집어 보면 보리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고 그만큼 보리로 해 먹는 보리밥이 중요했다는 의미이다. <세종실록> 1434년 음력 8월 3일에 우승경의 아내 원(袁)씨에게 정부에 바쳐야 하는 조세와 부역을 면하게 하고 쌀을 하사하였다. 이같이 상을 내린 이유는 원씨가 집안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432년 죽은 남편에 대한 아침, 저녁으로 식사처럼 올리는 상식(上食)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안의 어려움을 드러내기 위해 원씨가 대부분의 끼니를 풋나물과 함께 보리밥을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성종실록>에서 성종(成宗: 1457-1494)에게 지방수령들이 저지르는 여러 잘못들을 성균관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던 지방유학(幼學) 유승탄(兪升坦: ?-?)이라는 인물이 상소를 통해 수령들을 비판했다. 그 상소 내용 중에는 지방 수령들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준비한 곡식을 제때 풀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림을 겪었고 자신도 뼈와 살이 붙을 정도로 굶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자신을 포함해 다른 백성들이 보리밥을 먹어 죽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만큼 보리밥이 백성들에게 굶주린 시기를 넘겨주는 중요한 음식이었음을 나타낸다. ‘가난’ 혹은 굶주림과 보리밥의 연관성은 결국 춘궁기라는 단어와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남의 일이 아니던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계층에 따라 먹는 음식이 다르듯, 같은 음식임에도 피지배층에게는 생존에 필요했던 음식이 지배층에게 보리밥은 소박한 식사 혹은 건강을 위해 먹는 식사였다. 검소한 관리들에 대해서 보리밥으로 식사를 했다고 하면 검소한 관리라고 자주 표현했는데 이는 <세조실록> 1462년 음력 5월 15일 세조(世祖: 1417-1468)가 종친들과 높은 벼슬의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 성균관 생원 5명을 불러 책에 대해서 토론했다는 기록에 잘 나온다. 성균관 생원들이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토론하기 직전, 세종이 성균과 생원들에게 음식을 내려줬다. 일반적으로 왕이 내리는 음식이라 하면 당시로는 매우 귀했던 귤, 육류 반찬 혹은 궁중에서 빚은 술 등인데 이날 세조는 성균관 생원들에게 보리밥도 함께 내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리밥을 내린 이유에 대해 이후 혹시라도 백성들을 다스리게 된다면 교만하지 말라는 뜻에서 보리밥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만큼 관리가 된 이후에도 그만큼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 하는 관리가 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속담 중 보리밥 한솥 짓기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보리밥을 한솥 지을 정도로 오래 걸리는 시간이라는 뜻을 지는데 그만큼 보리밥을 짓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고 수고스러움을 드러낸다. 1950-1960년대 일부 지역에서는 보리밥을 짓기 위해서 우선 노란물이 나올 때까지 보리를 빡빡 씻은 후 2번에 걸쳐 보리를 삶아야지만 보리밥이 먹을만했고 흥미로운 점은 쌀뜰물이 사람이 먹는 국과 같이 다양한 음식에 썼던 반면 보리 씻은 물과 보리 삶은 물은 사람이 먹지 않고 동물에게 주거나 머리를 씻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씻은 물까지 보리와 쌀에 차이가 있다고 하니 보리의 상황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근현대에 들어와서 혼분식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과 함께 이전까지와는 다른 맥락에서 정책적으로 보리밥이 이용되다가 1980년을 기점으로 이후 꽁보리밥이 건강식이자 추억의 음식으로서 외식산업 중 하나의 메뉴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 대해 <경향신문> 1980년 8월 11일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정부의 보리먹기장려 정책과 함께 중장년층의 보리밥에 대한 옛 향수, 당뇨병에 특효라는 지식 보급 등이 복합된 결과로서 충청북도 청주시, 수원, 서울 등 전국 곳곳에 꽁보리밥 전문점이 생기고 있고 꽁보리밥의 형태도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이민재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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