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영양돌솥밥이란 곱돌로 만든 작은 솥에 쌀, 보리 등의 곡식을 넣고, 은행 잣 밤 대추 같은 영양식 재료를 추가하여 지은 밥을 말한다. 곱돌솥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시대에도 귀족층과 부유층들이 곱돌솥을 즐겨 사용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이 꽤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곱돌傳來의 名物」, <경향신문> 1962년 8월 1일). 곱돌은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해주와 전북 장수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돌로 제작하는데, 내구성이 좋아서 500년 이상을 견딘다고 한다. 그래서 충남 공주와 부여 등지에서는 5, 6대를 이어 자손들에게 전승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곱돌솥은 무쇠솥이나 구리솥에 비해 상품(上品)으로 인식되었다. 『박해통고(博海通攷)』 『규합총서(閨閤叢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도 밥과 죽은 돌솥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고, 무쇠솥 구리솥 순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문인 최립(崔岦: 1593-1612)의 기록에 의하면, 곱돌솥으로 차를 끓여 먹고 약도 달여 먹는 등 제법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또한 “떫은 쇠나 비린 구리 그런 솥에 비할쏜가”라고 하여 곱돌솥의 우수함을 예찬한 바 있다.(『간이집(簡易集)』) 돌솥밥은 즉석에서 소량으로 밥을 지을 수 있고, 또 곱돌의 특성상 온도가 고르게 유지되므로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별도의 그릇에 밥을 푼 뒤 솥에 물을 부으면 누룽지와 함께 숭늉을 더불어 즐길 수도 있다. 이처럼 귀한 용기에 지은 돌솥밥이 외식업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1970년대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주우체국(현재 경원동우체국) 인근에서 비빔밥을 판매하던 중앙회관의 남궁성 사장이 비빔밥을 따뜻하게 오래 먹을 수 있게 이 그릇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는 1969년에 ‘전주곱돌비빔밥’을 상표등록 했고, 비빔밥에 은행 잣 밤 대추 같은 영양식 재료를 추가하여 고객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1970년대 초반에는 서울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돌솥밥은 사치스런 음식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대한요식업 중앙회는 혼분식정책을 자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실천사항으로 즉석 돌솥밥 판매를 일체 폐지하였고, 이를 3회 이상 어길 시에는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3回 이상 違反은 告發」, <매일경제> 1971년 7월 21일). 식량자급이 원활해진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돌솥밥이 상용화되기에 이른다. 한때는 종로 뒷골목에 있는 ‘종각’이라는 식당의 돌솥밥이 큰 인기를 얻어 점심시간 때마다 150여 명의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돌솥밥 전문식당 鐘路 뒷골목 「종각」」, <경향신문> 1983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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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양미경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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