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궁초(宮綃) 댕기 풀어지고 신고산(新高山) 열 두 고개 단숨에 올랐네 무슨 짝에 무슨 짝에 부령(富寧) 청진(淸津) 간 임아 신고산 열두 고개 단숨에 올랐네(후렴) 백년궁합(百年宮合) 못 잊겠소 가락지 죽절비녀 노각이 났네 어랑천(漁郞川) 이백리(二百里) 굽이굽이 돌아 묘망(渺茫)한 동해바다 명태잡이 갈까 치마폭 잡은 손 인정 없이 떼치고 궁초 댕기 팔라당 황초령(黃草嶺) 고개를 넘누나(「궁초댕기」) 함경도 신민요 「궁초댕기」 앞부분 가사이다. 서해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생선이 조기라면 동해를 대표하는 생선이 바로 명태다. 최근에는 명태 어획량이 급감했지만, 오래전부터 명태는 한국인에게 아주 친숙한 생선이었고, 그 보관법과 요리법도 다양하게 발달되어왔다. 명태는 강원도 이북, 즉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많이 잡혔고,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적 어업이 동해안 각 항구에 이식됨에 따라 한국인 선원(船員)의 수요도 많아졌다. 이 노래 「궁초댕기」에 등장하는 ‘동해바다 명태잡이 갈까’ 하는 가사도 경원선(1914년 개통)과 함경선(1928년 개통)이 개통됨에 따라 내륙 지방의 인력이 기차를 타고 청진이나 원산 등의 항구 도시로 이동하여 일종의 임금 노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새롭게 동해안의 항구 도시로 모인 어민들에 의해 잡힌 명태는 철도망을 따라 전국으로 이송되었고, 이는 식탁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함경도 민요가 변형되어 일제강점기 초기에 탄생한 것이 「신고산타령」이라면, 「신고산타령」과 비슷한 정서의 가사와 곡조로 창작된 것이 바로 「궁초댕기」이다. 「궁초댕기」1942년 불사조가 작사하고 김교성(金敎聲: 1901-1960)이 작곡해 모란봉(金秋月: ?-?)이라는 가수가 부른 신민요이다. 불사조는 박영호(朴英鎬: 1911-1953)의 예명이다. 물론 김교성이나 박영호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기존의 「신고산타령」을 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궁초는 댕기감으로 많이 사용하는 비단의 한 종류이고 따라서 궁초댕기는 비단댕기라는 뜻이다. ‘백년궁합’은 오랫동안 사권 정분. ‘죽절비녀’는 대나무로 만든 비녀. ‘노각’은 늙은 오이. 가락지나 비녀가 노각처럼 낡게 되어도 백년의 인연을 잊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급속한 개화의 바람과 시대적 변화 속에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순정한 사랑을 다짐하자는 마음과 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사랑도 잊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이 함께 하는 다소 신파적인 내용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하응백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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