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개피떡
개피떡 이미지

개피떡은 절편 덩어리를 얇게 밀어 팥소를 넣고 접은 다음 반달 모양으로 찍어 공기가 들어가게 한 떡이다. 반달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둥근 공기 그릇 같은 걸로 눌러 찍을 때 바람이 들어가 흔히 ‘바람떡’이라고도 한다. 개피떡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후기이다.

『음식방문』(1800년대 중엽)에서 개피떡은 흰 떡 치고 푸른 것은 쑥을 넣어 절편 쳐서 만들되 거피팥 고물하여 소로 만들어 넣어 탕기 뚜껑 같은 것으로 떠내라고 했다. 지금의 개피떡과 유사하다.

1934년에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이 쓴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따르면 개피떡은 매우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고, 참기름을 발라서 접시나 합에 담아놓고 설탕이나 꿀을 찍어서 먹는다.

1800년대에 쓰인 음식책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나온 개피떡은 지금과 비슷한 형태도 있지만 조금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떡을 방망이로 얇게 밀어 소를 넣어 탕기 뚜껑 같은 것으로 떠낸다. 둘붙이는 흰 것 하나 푸른 것 하나를 똑같이 소를 넣어 접시로 떠내어 하나는 서(西)로 대고, 다른 하나는 동(東)으로 대서 붙인다. 3개로 붙이는 색을 청 백 홍 황을 쓴다. 홍은 흰떡에 분홍 물을 들이고, 황은 치자를 진하게 우려 들이고, 청은 쑥떡으로 하여 소를 넣어 작은 접시에 떠서 반으로 접어서 붙인다.’고 하였다.

개피떡을 청 백 홍 황색을 달리 하여 작고 갸름하게 여러 개를 만들어 각색으로 둘 또는 셋씩 붙인 것을 둘붙이(두부치) 또는 셋붙이(세부치)라 부른다. 이것을 ‘산병(散餅)’이라고도 한다.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산병은 삼색을 들여서 셋씩 붙여 떡 위에 얹어 쓰는데 성균관에서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산병은 개피떡의 일종인 셈이다. 산병과 같이 개피떡이 변해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떡이 하나 더 있다.
『시의전서』에 새끼손가락만큼 떠서 셋씩 붙이고 반만 꼬부려서 만드는 꼽장떡이 그것이다. 작은 개피떡 여러 개를 붙인 산병을 구부려서 양쪽 끝을 맞잡아 전체적으로 둥글한 모습이 된다. 곱장떡은 경기도 여주지역의 향토떡인 여주산병과 비슷하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따르면 개피떡을 ‘가피병(加皮餅)’이라고 했다. 궁중 연회에 ‘갑피병(甲皮餠)’이라는 이름으로 1873년(고종 10) 고종에게 존호를 올리고 신정왕후 조대비 책봉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에 오른 기록이 있다. 재료를 언급하지 않아 조리법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가피병, 갑피병 모두 개피떡의 다른 명칭으로 짐작된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이소영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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