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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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로 나뉜다. 도기와 자기의 가장 큰 차이는 소성온도의 차이로 도기는 주로 1200℃ 미만에서 구워진 경우 도기가 되고 1200~1300℃ 이상에서 구워지면 자기가 된다. 주로 1000도 미만에서 구운 경우 연질(軟質) 도기가 되고, 그 이상의 온도에서 구운 경우는 경질(硬質) 도기가 되며, 유약을 입혔는지의 유무에 따라 시유도기(施釉陶器)와 무유도기(無釉陶器)로 나뉜다. 자기는 점토(clay)에 고령석(高嶺石, Kaolinite) 가루를 섞거나 고령토(高嶺土, kaolin) 자체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어 1,200~1,400℃의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을 가리킨다. 고령토는 중국의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鎮) 부근의 고령촌(高嶺村)에서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중국에서 고령석이 들어간 점토에 유약을 바른 자기가 유행한 시기는 송나라 때이다. 1,2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자기는 쉽게 깨지지 않았으며, 특히 표면에 유약을 바르게 되면서 방수 효과서 커져서 식기로도 안성맞춤이었다. 송나라 시기에는 청색 안료를 넣은 청자(靑磁)가, 원나라 때에는 백자(白磁), 그리고 명나라 이후에 청화백자(靑華白磁)와 온갖 채색자기가 유행했다. 사기는 고급 자기와 달리 질이 좀 낮은 백토를 사용하여 1100℃ 전후 온도로 구워낸 그릇을 가리킨다. 비록 고급 백토를 사용하여 1,2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자기는 아니지만 사기는 도기(陶器)에 비해서 단단하고 수분 흡수율도 낮은 편이어서 금은 식기 대신 일상 식기로 사용하기에 알맞았다. 경제력이 없던 양반이나 농민들은 막사기 상사기 눈박이사기 등과 같은 사기를 식기로 사용했다. 막사기는 저질 백토계 점토로 조잡하게 만든 회백색계의 사기로 값이 쌌다. 일반 백성들의 식기는 조선 초기만 해도 관영 공방에서 제작해서 나누어주었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민간 공방에서 제작해 시장에 내놓고 팔았다. 백자 막사기를 식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일반 백성들의 삶은 20세기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식민지 시기인 1920년대에 서울 근교의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기에 대해 조사한 조선총독부 사무관인 사사키초우(佐佐木忠右)는 “일반인들은 사기그릇을 주로 사용하며, 목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최근 줄어들었다”(『조선(朝鮮)』, 1924년 1월~6월)고 했다. 비록 사기가 백성들의 으뜸 식기였지만, 나무로 만든 그릇인 목기 역시 빈곤층의 식기였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주영하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미술]
이미지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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