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초계탕(「비 오는 길」)
초계탕(「비 오는 길」) 이미지

“자아, 이걸 좀 드시우. 이미 청하였던 음식이라 도리어 미안하웨다만-” 이렇게 말하며 일변 손수 술을 따라 마시면서 초계탕 그릇을 병일이에게로 밀어 놓는다. “자, 좀 드시우.” 이렇게 다지고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은수저 한 벌을 더 가지고 나와서 자기가 마침 떠먹으며, “어어 시원해. 하루 종일 밥벌이하느라고 꾸벅꾸벅 일하다가 이렇게 한잔 먹는 것이 제일이거든요.”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최명익의 단편소설 「비 오는 길」이다. 최명익(崔明翊: 1902-1972)은 이상, 허준 등과 함께 1930년대 심리주의 소설을 일군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소설가이다. 고향인 평양에서 동인지 <백치>의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비 오는 길」이 문단의 주목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역사소설에 전념하여 장편 『서산대사』를 썼다. 대표작에 「비 오는 길」, 「무성격자」, 「폐어인」, 「심문」, 「장삼이사」 등의 중단편과 장편 『서산대사』가 있다. 「비 오는 길」의 주인공은 김병일, ‘신흥 상공도시’ 평양의 공장지대에 자리 한 어느 공장의 경리 직원이다. 북쪽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서울(당시 이름은 경성) 다음의 대도시였던 평양은 서울이 그러했듯 1930년대 들어 급속하게 팽창하였다. “도시의 발전은 옛 성벽을 깨뜨리고, 아직도 초평(草坪, 풀밭)이 남아 있는 이 성 밖으로 뀌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평양의 급속한 변화는 이년간 도시를 가로질러 출퇴근해 온 주인공의 눈을 통해 소설에 반영된다. 이 작품을 참고하면 이 시기 평양의 변화를 아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이다. 김병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고, 때로는 니체를 상상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높은 수준의 독서가이다. 직장생활은 다만 생계의 방편일 뿐이고, 돈과 안락한 생활은 관심 밖이다. 그의 정신은 속인들의 세계 밖 드높은 곳을 밟고 있지만 성찰의 눈길은 냉정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으니 “발걸음 하나나마 자신 있게 내짚을 수 있는 명일의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오직 가혹한 운명의 채찍 아래서 생명의 노예가 되어 언제까지 살지도 모를 일생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괴로워하지만 자신이 걷고 있는 고답의 행로를 포기하고 속중의 세계에 합류하지는 않는다. 그는 “혹시 늦은 장맛비를 맞게 되는 때가 있어도 어느 집 처마로 들어가서 비를 그으려고 하지 않았다. 노방의 타인은 언제까지나 노방의 타인이기를 바라” 여전히 그 고답의 행로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 소설 내내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명일의 계획’ 없이 길가의 타인으로서 세계와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존재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다. 「비 오는 날」(손창섭)의 비가 전쟁으로 황폐해진 청년들의 방향 잃은 정신을 상징하고, 「장마」(윤흥길)의 비가 적대와 피의 전쟁 상황을 상징하는 것과 함께 우리 소설에 나오는 비 상징의 대표 가운데 하나가 「비 오는 길」의 비이다. 이런 주인공의 반대쪽에 놓여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인물은 사진사 이칠성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한잔 즐기는 이칠성의 술상에 초계탕이 안주로 올랐다. 초계탕은 닭 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다음 닭의 살코기를 잘게 찢어 넣어 만든다. 1930년대에 나온 조리서에서 처음 요리법이 소개되었다. 평안도와 함경도 등에서 겨울에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들 북쪽 지역에서는 차게 한 메밀국수를 겨울에 즐겼듯이 일종의 냉국인 초계탕 또한 겨울에 즐겼던 것이다. 이처럼 좋은 음식을 안주 삼아 하루 노동의 피로를 푸는 이칠성은 돈, 성, 음식, 술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과 넉넉한 생활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초계탕은 그런 그의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요소로 이 소설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정호웅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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