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금중탕은 궁중의 연회에 열구자탕(신선로)만큼이나 많이 오른 탕음식 중 하나이다. 1719년 연회에는 ‘禁中湯(금중탕)’으로 표기하였으나 이후에는 ‘錦中湯(금중탕)’으로 바뀌었다. 1719년(숙종 45) 9월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된 것을 경축하기 위해 베푼 진연에서 숙종의 미수상에는 금중탕(禁中湯)이 올랐다. 재료를 보면 어린닭[鷄兒], 표고(蔈古), 박오가리[朴亏巨里], 고사리[生蕨], 참버섯[眞茸], 간장(艮醬), 후춧가루[胡椒末], 밀가루(眞末), 계란(鷄卵), 참기름(眞油), 잣(實柏子)이다. 1828년(순조 28)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1789-1857)의 사순을 경축하기 위하여 베푼 진작 연회에 금중탕이 등장하였다. 금중탕의 재료는 어린닭[鷄兒], 계란(鷄卵), 해삼(海蔘), 무[菁根], 박고지(朴古之), 표고(標高), 간장(艮醬), 잣(實柏子), 후춧가루[胡椒末]이다. 두 연회에 등장한 금중탕은 재료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나타났다. 공통적으로는 어린닭, 표고, 박을 길게 말린 박오가리(박고지), 간장, 후춧가루, 잣이 사용되었다. 1829년 연회의 금중탕에는 1719년 연회의 금중탕에 들어간 고사리나 참버섯은 빠지고, 해삼과 무가 첨가되었다. 1901년(광무 5) 헌종(憲宗: 재위 1834-1849)의 계비(繼妃)인 명헌태후(明憲太后: 1831-1904)의 칠순 연회에 오른 금중탕에는 소안심(牛內心肉), 배골(背骨), 곤자소니[昆者巽] 등 내장류와 미나리[水芹], 전복(全鰒)등이 추가되어 이전의 금중탕 보다 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한 음식으로 변모하였다. 1800년대 초엽에 나온 조리서 『주찬(酒饌)』에 기록된 금중탕의 조리법을 통해 궁중의 금중탕 만드는 방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묵은 닭을 푹 삶아서 다시마 박고지 토란 무를 손가락처럼 썰어 넣고 함께 지진 다음, 장을 넣고 간을 맞춘다’고 하였다. 궁중에서는 어린 닭을 사용한 반면 민간에서는 묵은 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이소영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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