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청포묵은 녹두(綠豆)로 만든 묵이고, 청포묵에 치자물을 들여 노랗게 만든 것이 황포묵이다. 청포묵은 조선시대에는 다른 명칭도 있었다. 이공(李公: ?-?)의 『사류박해(事類博解)』에 따르면, ‘청포’, ‘黃泡’(황포), ‘綠豆腐’(녹두부), ‘묵’이 모두 청포묵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또한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보아도 ‘녹두부(菉豆腐)’는 ‘청포(靑泡)’라 이름하며, 속명(俗名)은 ‘묵(黙)’이라 하는데 초가을에 생산한 녹두로 만들고 색깔이 푸르면서도 부드럽고 맛있다고 소개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청포묵’보다는 ‘녹두부’나 ‘묵’이 일반인들에게 더 친근한 이름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두부라는 뜻의 ‘포(泡)’자가 들어간 ‘청포(淸泡)’를 주로 쓰게 되면서, 오늘날 청포묵이란 명칭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조선 후기 문필가였던 이옥(李鈺: 1760-1815)은 「삼난(三難)」이란 글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는 조선 사람들이 의복, 음식, 그릇 등 물건들의 명칭을 표현하면서 우리의 이름을 버리고, 중국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을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였다.(이옥 저,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2009: 417쪽) 쉽고 친근한 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중국식 한자어를 쓰는 세태를 지적한 것이다. 이옥은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중 청포묵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서울 사람이 친한 시골 사람에게 지금 서울의 가게에는 ‘청포(靑泡)’가 한창 맛있다며 대접할 테니 오라고 초대했다. 청포가 무엇인지 몰랐던 시골 사람은 기이한 음식일 거라 짐작하며, 이튿날 바로 서울 사람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에 찬 그에게 서울 사람이 내놓은 건 ‘녹두부’였다. 음식을 다 먹도록 끝내 기대한 ‘청포’는 나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시골 사람은 결국 서울 사람에게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서울 사람이 대접하겠다던 ‘청포’는 주지 않고 묵만 내놓더라며 자기를 속였다고 노여워했다는 것이다.(이옥 저,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편역, 2009: 420쪽) 청포묵을 만드는 방법은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1921)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녹두를 불려서 껍질을 벗긴 다음에 맷돌에다 간다. 간 녹두를 명주 자루[綿紬纏帶]에 넣고 한참을 주물러서 빠져나온 녹말을 가라앉힌다. 윗부분의 맑은 물을 따르고, 가라앉은 것만 가지고 묵을 쑨다. 가라앉은 것을 솥에 붓고 물도 적당히 넣은 후 불을 때며 풀 쑤듯이 하며 끓이다가 다 익으면 그릇에 퍼 담아 그대로 굳히면 청포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청포묵으로는 묵무침, 묵강정, 묵전, 묵국, 묵강정 등을 만들거나 채를 썰어 탕평채로 무치거나 콩국(콩국수)에 국수 대신 넣어 먹었다. 특히 청포묵국은 충청도의 향토음식으로, 멸치장국에 계란을 풀어 청포묵과 함께 끓여내는 국이다(농촌진흥청, 2008a: 111쪽; 농촌진흥청, 2008b :100~101쪽). 현재는 청포묵, 메밀묵, 도토리묵을 사시사철 고루 먹고 있지만, 조선 후기에는 도토리묵은 주로 겨울철에, 청포묵은 봄철에 먹었고 도토리묵보다는 청포묵을 더 고급음식으로 여겼다. 한편 청포묵을 만들고 남은 물은 버리지 않고, 걸러서 비지로 쓰거나 국이나 죽 등 다른 음식을 만들 때 활용하였다. 1800년대 말의 한글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 ‘알국’에서는 녹두묵을 만들고 남은 물은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추고 끓이면 묵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국자로 떠서 그릇에 담은 뒤 고춧가루와 김 부순 것을 얹으면 알국이 된다고 했다. 녹두물로는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리하여 1950년 2월 5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쌀을 사기 어려워 죽을 끓여 먹어야 하는 집에서는 근처에 녹두묵 집을 찾아가 저녁마다 녹두묵을 만들고 남은 녹두물을 사다가 죽을 쑤면 가장 경제적이고 맛있는 녹두죽을 먹을 수 있다고 제언하였다. 녹두물로 녹두물죽을 쑤는 방법은 이용기(李用基: 1875-1933)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년) ‘묵물죽(綠豆水粥)’에 따르면, 가라앉힌 묵물의 윗물과 불린 쌀을 끓이다가 쌀이 퍼질 즈음에 아랫물까지 붓고 쑤라고 했다. 이 죽은 약간 배틀한 맛이 나며, 간은 먹을 때 소금을 넣어 맞춘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김혜숙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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