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풍악소리 서쪽 누각에 요란하게 울리는데 소나기에 저녁 바람 불자 가을처럼 시원하네 고운 이웃 여인의 새로운 솜씨에 힘입어 평양 냉면이 사람의 목구멍을 시원하게 하네 笙簫迭發閙西樓 驟雨斜風颯似秋 賴有芳隣新手法 箕城冷麵沃人喉 *조두순, 「삼호의 세심정에서 현석의 소동루로 거처를 옮기고서 [自三湖洗心亭, 移卜玄石之小東樓, 今二年矣, 而前冬信宿殆悤悤, 癸卯五月, 得更來錄雜識]」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은 본관이 양주(楊州)고 자는 원칠(元七), 호는 심암(心菴)이다. 벼슬이 영의정과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는데 문학에도 뛰어나 문집 『심암집(心菴集)』에 아름다운 작품이 꽤 보인다. 마포에 세심성(洗心亭)과 소동루(小東樓)를 두고 풍류를 즐긴 바 있다. 그때 인근에 살던 그의 벗 김대연(金大淵)이 평양 출신의 첩을 데리고 살았는데 냉면을 잘 만들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만든 냉면을 먹고 이 시를 지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바람이 불자 오뉴월 찌는 듯한 더위가 잠시 주춤해졌다. 여기에다 시원한 냉면 한 사발을 먹게 되었으니, 최고의 피서를 즐긴 것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냉면의 역사는 자세하지 않다. 17세기 전반의 문인 장유(張維: 1587-1638)가 「붉은 국물에 만 냉면(紫漿冷麪)」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불그스름 국물은 노을빛이 어렸는데, 백옥 같은 가루는 눈꽃이 고루 배었네. 젓가락 들자 입안에 향기가 돋아나고, 옷을 껴입어야 할 듯 한기가 스미네[紫漿霞色映 玉粉雪花匀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라 하였지만 오늘날 먹는 냉면과 같은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오늘날과 유사한 냉면을 노래한 시는 18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평양의 풍속을 시로 노래한 「서경잡절(西京雜絶)」에서 “냉면 때문에 돼지 수육 값이 막 올랐다네(冷麪蒸豚價始騰)”라 하였으니 냉면에 넣을 돼지고기 값이 폭등할 정도로 냉면이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면백(李勉伯, 1767-1830)이 평양의 풍물을 노래한 「기성잡시(箕城雜詩)」에서는 “얼음 넣은 냉면에 뜨끈한 홍로주(冷麪氷入紅露熱)”라 하였으니, 평양의 홍로주와 냉면의 궁합이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특히 오횡묵(吳宖默)이 1898년 제작한 「관아의 주방에서 냉면을 내어왔기에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 품평을 하다[冷麵自官廚至與一座評品]」에서 “누가 메밀국수를 교묘하게 잘게 뽑아내고, 후추와 잣, 소금, 매실 얹어 색색으로 꾸몄는가. 큰 사발에 부어 넣자 펑퍼짐하게 오므라드는데, 두 젓가락으로 잡으니 굼틀굼틀 따라서 올라오네. 맛을 보니 창자까지 그저 시원한 줄 알겠는데, 늘 먹다보면 수염에 슬쩍 붙겠지만 무엇이 대수랴. 게다가 세밑에 차가운 등불 아래서, 기이한 맛과 향기까지 더하니 얼마나 좋은가[誰翻佛飥巧抽纖 椒栢塩梅色色兼 着入大椀盤縮緖 夾持雙箸動隨拈 試嘗便覺偏醒胃 長啜何嫌薄汚髥 况玆歲暮寒燈夜 異味奇香一倍添]”라 하였다. 소금과 매실 식초로 간을 하고, 잣을 띄워 멋을 부렸다. 오늘날의 냉면과 거의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이종묵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문학]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