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냉면
냉면 이미지

냉면(冷麪)은 차게 식힌 육수에 메밀국수나 감자녹말국수를 넣고, 무절임과 배추절임, 고기를 고명으로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육수를 부어서 물냉면으로 먹기도 하고, 육수 대신 맛깔스러운 양념을 얹어 비빔냉면으로 즐길 수도 있다. 냉면 중에는 관서지방의 평양냉면과 해주냉면을 제일로 쳤다. 그러나 혹자는 냉면의 발생기원을 더듬어보면 냉면이 그리 고상한 음식이 아니라면서, “1년 열두 달에 쌀밥 먹는 날은 생일날과 명절날밖에 없는 이 지방의 화전민들이 메밀이나 감자가루 또는 귀리를 국수처럼 만들어 먹은 음식이 오늘날 냉면의 원조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냉면(冷麪)에 서린 유래(由來)」, <매일경제> 1966년 7월 14일). 즉, 냉면이 발달한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는 평야가 귀한 산간지이다 보니, 하는 수 없이 메밀, 감자, 귀리를 이용한 국수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기원이 어찌되었건, 관서지역 사람들에게 냉면은 겨울철이면 기다려지는 음식이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시월 들어 서관(西關)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2중 휘장에 폭신한 담요를 깔아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의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과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절임 곁들이네”라고 하여 겨울철 따뜻한 방에서 냉면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하였다(정약용,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홍석모(洪錫謨: 1781-1857)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음력 11월에 먹는 겨울철 시식(時食)으로 냉면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929년 <별건곤(別乾坤)>에 실린 ‘사시명물 평양냉면(四時名物 平壤冷麵)’에서 김소저(金昭姐)라는 필명의 필자는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리는 날, “꽁꽁 언 김치죽을 뚫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다 한 수저, 두 수저 풀어먹고”, 너무 추운 나머지 “우루루 떨려서 온돌방(溫突房) 아랫목으로 가는 맛”, 그것이야말로 평양냉면의 참맛이라고 했다. 그러나 근대시기로 접어들면서 냉면은 겨울 뿐 아니라, 사시사철 어느 때고 즐길 수 있는 별미(別味)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얼음이 있다. 냉면을 냉면답게 차게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음이 필요했는데, 인위적으로 얼음을 만들 수 없었던 전근대시대에는 겨울철이 되어야만 냉면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독일에서 인공 얼음을 만드는 냉동기가 발명되었고, 이러한 기술이 1910년경 식민지조선에 유입되어 제빙소와 제빙공장이 문을 열었다(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 이러한 과정을 거쳐 냉면은 이제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급기야는 더운 여름철 별미로 ‘재탄생’ 되었다. 1920년대 말 서울 청계천 북쪽에는 40여 곳이 넘는 냉면집이 있었다고 한다(주영하, 「주영하의 음식 100년(8): ‘사시사철’ 별미, 냉면」, <경향신문> 2011년 4월 26일). 이처럼 냉면집이 호황을 누리게 된 배경에는 일본 화학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도(味の素)의 공이 크다. 원래 냉면은 동치미와 고기육수를 적절히 배합해서 국물 맛을 내는데, 이렇게 하려면 육수 숙성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대중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지노모도 한 방울이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1931년 12월 1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냉면+아지노모도=미미(美味), 모든 음식+아지노모도=미미, 음식점+아지노모도=천객만래(千客萬來)”라는 카피는 냉면집을 타깃으로 매우 치밀하게 기획된 광고임을 알 수 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양미경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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