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김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인 뒤 양념하여 발효시킨 음식이다. 한자어로는 沈菜(침채)라고 한다. 국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김치’라는 명칭은 ‘딤채’에서 유래하였다. 딤채에서 침채로, 침채에서 짐치로 변화하여 결국 김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1924년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저자인 이용기(李龍器: 1897- 1933)는 김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우리나라 사람이 밥 다음으로 없으면 못 견디는 것으로 만반진수(滿盤珍羞: 갖가지 진귀한 음식)가 있어도 김치가 없으면 음식 모양이 되지 못 한다’ 하였다. 특히 김치처럼 염분이 많은 음식은 무미(無味)에 가까운 익힌 곡물을 씹어서 삼킬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곡물식에서 부족할 수 있는 여러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배추김치가 전체 김치를 대표하는 지금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채소로 담근 침채가 각기 비슷한 위상을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승정원일기』 인조 26년(1648)년 9월 19일자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이시만(李時萬, 1601-1672)은 구월에는 침채로 가지(茄子: 가자)를 진배(進排) 하는 것이 규정인데 내자시에서 대신 토란(土蓮: 토련)을 대신 올렸다며 해당 관원을 추고(推考) 할 것을 청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후기 궁중에서 계절마다 침채로 올리는 채소가 정해져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과 모양과 조리법은 다르지만 적어도 1800년대 후반부터는 배추를 사용한 김치가 일상적으로 소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 Underwood: 1851-1921)등 의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행문에 배추로 담근 김치가 자주 묘사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개화기 외국인들은 김치를 종종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독일의 음식인 사워크라우트(sauerkraut)와 비교하였다. 현재의 배추와 비슷한 반결구 형태의 배추가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1850~1860년 경으로 현대와 비슷한 형태의 통배추김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박채린, 2013). 따라서 통배추김치의 조리법은 1800년대 후반이 되어야 조리서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자미상의 1800년대 말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는 ‘菘沈菜(숭침채) 배추통김치’ 라는 음식의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다. 배추는 한자로 白菜(백채) 혹은 菘菜(숭채)라고 하므로 숭침채는 곧 배추김치를 뜻하는데 여기에 배추통김치라는 한글 음식명을 덧붙였다. 이 책의 배추통김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통배추를 절여서 실고추, 파, 마늘, 생강, 밤, 조기젓, 청각, 미나리, 소라, 낙지 등을 섞어 간을 맞춘다. 무와 외지(오이지)도 썰어 소와 함께 배추에 켜켜이 넣는다. 3일 후에 조기젓국을 달여 물에 타서 부으면 좋다. 『시의전서』의 배추통김치는 고춧가루를 주로 쓰는 지금의 조리법과는 차이가 있다. 『시의전서』의 조리법처럼 조선시대에는 고춧가루가 아닌 실고추나 고추를 채쳐서 김치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고추를 쓰더라도 많지 않은 양을 사용하였다. 근대이후 조리서의 조리법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김치에 사용되는 고추의 양은 근대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의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고 색이 붉은 김치가 되었다고 한다(서모란과 정희선, 2015).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서모란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 이미지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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