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콩국수는 단백질과 지방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의 기운을 돋궈주는 음식이다. 콩을 삶아 곱게 간 다음 체에 걸러낸 후 그 국물에 국수를 말아 소금으로 간을 하고 얼음을 띄워 먹는다. 콩국수를 먹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680년경의 조리서인 『요록(要錄)』에는 태면(太麫)이라는 이름으로, 1800년대 말에 나온 저자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깨국수와 함께 ‘콩국’ 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시의전서에 소개된 조리법은 콩을 물에 담가 불리고 삶아서 곱게 간 다음 가는 체에 밭치고 소금을 타서 간을 맞춘 다음, 여기에 밀국수를 말되 웃기는 깻국과 같이 하여 얹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근현대시기 수필가 조풍연(趙豊衍: 1914-1991)은 1987년 콩국수에 관한 짤막한 글을 경향신문에 게재하였다. 그에 의하면, 콩을 간 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 방법은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이라고 한다. 또, 콩국수라는 음식명은 최근에 들어 새로이 만들어진 이름이고 원래 이 음식은 콩국으로 불렸다고 설명하였다. 그가 소년 시절, 큰 통에 콩을 간 물을 담아 얼음을 띄워 파는 상인이 동네 골목에 와서 ‘시원하고 맛 좋은 얼음에 콩국을 사료오’라고 외치며 콩국을 팔곤 했었는데 그 때가 되면 아낙네들이 저마다 그릇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 장수는 신이 나서 반기며 콩국에 우동 사리와 콩국물을 넣고 얼음 두어 조각을 띄워서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회상하였다. 면으로는 냉면국수 등 취향에 따라 골라서 먹을 수 있는데 국수집에서 뽑아주는 우동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경향신문>1987년 8월 21일자) 콩국수는 양곡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1960~1970년대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혼분식(混粉食) 장려정책에 힘입어 확산되었다. 1970년대 말, 쌀의 자급자족에 성공하기까지 한국은 쌀 부족 국가였다. 정부는 미국에서 대량 도입된 값싼 밀가루를 비롯하여 쌀을 대체할 잡곡 등을 섭취할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는데 이 식량정책은 식생활의 '개선'이라는, 대대적인 국민운동 형태로 전개되었다. 콩국수에 넣어서 먹는 밀국수는 정부가 저극 권장한 밀가루 소비 확대와 직결되는 것이었고 또 한편으로 콩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손색이 없는 식품이었다. 즉, 콩국수는 혼분식 장려 정책 차원에서 훌륭한 영양식품이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된 밀가루 덕분에 크게 유행했다. 일례로, 절미운동이 한창이던 1975년 7월, 한국 식생활개선 연구회 주최로 국립공보관에서 개최된 '식생활 개선 전시회'에서 콩국수는 샌드위치, 감자스프, 고구마 도넛 등과 함께 영양 대용식(代用食)으로 전시되었다. (<동아일보>1975년 7월 30일자) 1977년 <동아일보>에는 절미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던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수원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에서 콩국수 점심을 먹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동아일보>1977년 7월 7일자) 한편, 1970년대 전반에 한국 시장에 처음 등장한 믹서기도 콩국수의 확산에 한 몫을 하였다. 그 때까지 콩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멧돌에 콩을 갈아서 다시 체에 걸러내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으나 믹서기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고운 콩국을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콩국수는 여름 더위에 지친 현대인의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콩국수를 먹을 때는 오이채 등 채소를 얹는 것이 일반적이나, 황해도 지방에서는 수수로 경단을 만들어 띄워 먹기도 한다.
- 제작자
-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집필자
- 박경희
- 발행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 저작권자
- 한국문화원연합회
- 분야
- 한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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