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사전

갈비찜
갈비찜 이미지

갈비찜은 소나 돼지의 갈비 부위를 토막 쳐 채소와 함께 끓여 조린 것을 뜻한다.
갈비찜이라고 하면 주로 소갈비찜을 뜻하며 돼지갈비로 만들었을 경우 별도로 돼지갈비찜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갈비의 옛말인 ‘가리’라는 용어를 사용해 가리찜이라고 불렀으며 근대 이후에는 가리찜과 갈비찜을 혼용하다가 현재는 갈비찜을 단독 표준어로 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乫非蒸(갈비증)이라고 한다.

『정조실록』에는 정조 19년(1795) 6월 18일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 - 1815)의 61세 생신인 회갑(回甲)과, 그 이듬해인 진갑(進甲)의 진찬(進饌)에 갈비찜[乫非蒸, 갈비증]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갈비찜에는 갈비만을 사용하지만 조선시대부터 1920년경까지는 소위, 곱창, 양 등 다양한 부위의 내장을 함께 넣어서 만들기도 하였다. 1800년대 후반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의 조리법에는 한 치 길이로 자른 갈비와 함께 소위, 곱창, 무, 다시마, 표고, 석이, 파, 미나리가 들어간다.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1921)에서는 갈비 외에도 양, 곤자소니(소 창자의 맨 끝 부분), 부아(폐), 창자 등의 다양한 부위의 소 내장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미나리를 꼬지에 꿴 뒤 달걀 물을 입혀 부친 음식으로 고명의 일종인 ‘미나리 초대(미나리 적)’와 표고버섯, 석이버섯도 들어간다.

반면 『시의전서』와 비슷한 시기에 쓰인 저자미상의 조리서 『술 만드는 법』은 갈비 외에 다른 내장 부위는 넣지 않은 갈비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쓰인 『주식시의(酒食是儀)』의 갈비찜도 돼지갈비와 소갈비를 섞어서 만들지만 내장 부위는 들어가지 않는다.

한편,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1934년 판의 가리찜 재료에는 1921년 판에 포함되어 있던 소의 내장 부위가 전부 빠져있다. 1930년대 이후 조리서인 『사계의 조선요리(1935)』와 『조선요리법(1939)』도 역시 내장 부위를 넣지 않은 갈비찜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기를 지나면서 갈비 외에도 다양한 내장을 넣어 만들던 갈비찜 조리법이 점차 사라지고 갈비부위만을 사용한 갈비찜 조리법이 정착되어 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요리법(1939)』의 저자인 조자호(趙慈鎬: 1912-1976)는 대표적인 조선요리로 구자(신선로), 골탕, 애탕, 청국장 등과 함께 갈비찜을 꼽았다(<동아일보> 1937년11월24일자).

갈비찜은 최근까지도 손님을 접대 할 때나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에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로 손꼽힌다. 조선시대부터 갈비를 연말연시 선물이나 세찬으로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선물로 받은 갈비를 이용한 갈비찜, 갈비구이 등이 명절 상차림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작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집필자
서모란
발행기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연합회
저작권자
한국문화원연합회
분야
한식[음식]
이미지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빠른 이동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