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인물탐방

염불 외는 마음으로 천만 번의 붓질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수산(樹山) 임석환
등록일 2021-04-07 조회수1501
염불 외는 마음으로 천만 번의 붓질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수산(樹山) 임석환

염불 외는 마음으로 천만 번의 붓질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수산(樹山) 임석환

‘불가사의하다(不可思議).’는 말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이상하고 야릇한 이치를 의미한다. 불화(佛畵)의 세계가 그렇다. 오묘하고도 불가사의하고, 볼수록 빠져든다. 불교문화권에 노출된 적 없는 이들마저 매료시키는 불화에는 다른 회화와는 다른 화려함과 섬세함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불화장이 단청장에서 독립, 지정된 후, 불화장으로 오롯이 인정받고 있는 수산 임석환 장인을 만나 불화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불화장 임석환
interview

불화장 임석환 씨는 불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붓질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말 안에는 내면에 불심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불화를 그리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신상을 만드는 일이기에 창작보다 중요한 것이 교리의 정확한 재현이고, 전통의 계승이다. 하다보면 각자의 개성이 묻어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개성보다 전통을 우선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화장 임석환 씨가 50년 가까이 걸어온 길이 그렇다.

불화의 진정한 의미와
불화장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불화는 불교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그림입니다.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500여 년간 이어진 무불상 시대는 인도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 불상이 조성되면서 그 막을 내렸죠. 그 이후에 부처의 신성은 ‘32상 80종호’라는 신체적 특징을 표현하는 것으로 굳어졌고, 범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어요.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처의 모습에는 이런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온몸이 황금빛이라거나, 가늘고 부드러운 손가락,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마다 얇은 막이 있고, 수레바퀴 자국이 있는 편평한 발바닥, 무릎 아래까지 닿는 긴 팔과 두 눈썹 가운데 길고 흰 털, 정수리 위로 상투처럼 튀어나온 살 등이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생소하죠. 마치 외계인의 모습처럼 보이는 외형에 신성을 부여하는 일이 바로 불화장의 몫입니다.

불화는 신앙의 대상이자 불교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디자인밈 불화는 신앙의 대상이자 불교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디자인밈
그림 속에 신성을 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떤 계기와 과정을 거치셨을지 궁금합니다.

백일기도하며 성심을 다한 끝에 혜암 스님께 대대로 전해오던 초(草)를 받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군대도 안간 어린 나이었지만, 그보다 더 어릴 적부터 불화에 관심이 있었으니 오래도록 꿈꿔온 순간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장차 문화재가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도 절대 아니고, 그런 욕심을 가졌던 적도 없어요. 주변의 권유가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 싶은 일이죠. 다만 불화를 대하는 순간순간마다 최선 그 이상의 것을 불태웠던 것 같아요. 가장 혈기 왕성한 젊은 날에는 지리산 쌍계사에서 주먹만 한 종기가 생길 때까지 한자리에 앉아 그림만 그렸어요. 오래 앉아있을수록 종기가 덧났지만, 신기하게도 붓만 들면 아픔을 잊게 되더라고요. 습화(習畵)가 몇 천 장이 쌓일 때쯤, 그림을 포개면 기계로 복사한 것처럼 그림의 선이 하나로 겹쳐졌습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작품이 신상이 되었고, 국가무형문화재라는 중요한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몸을 지탱해온 한쪽 어깨는 쑥 올라갔고, 덩달아 몸의 균형이 비틀어졌죠. 상을 왜곡시키고 시야를 좁히는 돋보기 없이는 작업이 힘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붓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불화를 그리는 과정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디자인밈 불화를 그리는 과정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디자인밈
올바른 불화를 후대에 전수하는 일에도
남다른 애정과 가치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불화가 지금 과도기거든요. 사찰은 물론, 학교나 문화센터 등 가르치는 곳이 많이 늘었죠. 근데 기록이 없는 부분이 있어 일본의 기록과 불화를 참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왜곡시키거나 변형시키는 경우도 있고요. 예를 들어 보살을 여성이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수염을 안 그린다거나, 부처님 몸을 살구빛으로 칠한다거나. 우리 불화가 지켜온 전통이 있는데, 잘 모른다는 핑계로 마음대로 그려버리면 안되겠죠. 경기도 고양시에 세운 수산전통불교미술원에서 불화를 전수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민화를 하는 사람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많은 사람이 오고가지만, 고행이나 다름없는 이 길을 오래 견디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몇 천 장씩 습화를 하진 않지만, 한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고행하듯 해야 하니, 그림 좀 그린다는 사람들도 어려워해요. 한번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손이 작고 가벼워서 곧잘 따라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가르치면 확실히 습득 속도가 남달라요. 학교 성적이 더 우선시 되는 사회보다는 문화예술도 조기 교육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저는 제자들에게 직접 호를 지어줄 만큼 각별한 애정이 있어요. 지금은 30명 정도의 전수자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수산전통불교미술원 불화전수관. 임석환 불화장은 제자들에게 직접 호를 지어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디자인밈 수산전통불교미술원 불화전수관. 임석환 불화장은 제자들에게 직접 호를 지어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디자인밈
불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실력뿐만 아니라
뜨거운 불심과 애정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단청부터 시작해 별지화를 하다가 불화를 하게 되었어요. 불화는 우선 시왕도의 초나 산신탱화같은 것을 먼저 그립니다. 간략하면서도 인물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작품이죠. 특히 산신도는 민화를 그리던 사람들이 그렸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서민적이고 소탈합니다. 그러다가 인물을 더 정교하게 표현하는 보살을 그리고, 갈필에 복잡한 구도와 종합적인 기량이 필요한 사천왕초를 그려가며 연습하는 것이죠. 같은 시간에 시왕초를 열 점 그린다면 사천왕초는 한 점 정도 그릴 수 있어요. 작업에 더 많은 공력과 시간이 필요한 셈이죠. 단계별로 충분히 실력을 쌓아야 다음 작품에 들어갈 수 있는데, 숱한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실력만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불화에 대한 이해와 감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 불화는 참 온화해요. 사후 심판을 관장하는 시왕과 지옥을 묘사한 감로탱의 장면, 액운을 막는 사천왕의 모습도 지나치게 과장된 일본과 달리 부드럽고 해학적이죠. 부처님을 그리는 단계에 이르면 한없이 자비로운 불성을 담아내야 합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담은 부처님의 미소야말로, 오롯이 제가 불자들과 후대에 전하고 싶은 우리 불화의 참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전통 불화는 부드럽고 해학적인 면이 강하다. ©디자인밈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전통 불화는 부드럽고 해학적인 면이 강하다. ©디자인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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