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백과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당시의 건축물이 그려진다. 고분의 벽면과 천장에는 당시 목조 건물의 기둥, 공포, 창방 등이 그려져 있고 좁은 면에까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천장에는 연꽃이 활짝 피고 기둥에는 용이 꿈틀거린다. 초상화 주변에 그려진 건물에 색을 칠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시대의 목조 건물(궁궐)에도 채색을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표
고구려의 벽화 단청은 오행설을 근거로 칠해졌다. 무덤을 수호하는 사신도四神圖이외에도 해와 달과 별을 그린 천문도天文圖와 신선神仙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디시 태어난다고 믿어, 무덤 주인공이 생전에 집에서 사용했던 생활용품이나 당시 생활풍속 등을 묘사한 그림도 보인다.
단청의 기원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대단청의 유물은 찾아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황해도 안악의 안익3호분 동수묘冬壽墓다. 무덤에 새겨진 글귀로 보아 357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청으로 평가받는다. 이외 매산리 사신총梅山里四神塚(4-5세기), 감신총龕神塚, 안성동 대총安城I洞大塚, 쌍영총雙楹塚, 강서대
단청은 이름을 다양하게 썼다. 단확丹?, 단벽丹碧, 진채眞彩, 단록丹綠, 당채唐彩, 오채五彩, 화채畵彩, 단칠丹漆 등이라 불렀다. 단청을 하는 사람은 화사畵師, 화원畵員, 화공畵工이라 하고 이를 세분하여 가칠장假漆匠과 도채장途彩匠이란 직책으로 나눈다.
단청과 관련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생해서 실제 소나무인 줄 알고 새가 찾아왔다는, 그 유명한 신라 진흥왕(540-576년 재위) 때 화가 솔거의 「노송도老松圖」 이야기에 단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창방 몸통의 일부도 기둥에 끼우는 것이 좋다. 주먹장만 기둥에 끼우면, 후에 나무가 마르면서 뒤틀림이 생겨 기둥과 창방을 결구한 부분에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의 세세한 처리 여부에 따라 목수의 자질이 평가되고, 그것은 바로 집의 견실함과 품격으로 연결된다.
한옥은 추워서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주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소위 집장사집 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집장사 집에서는 기둥에 홈을 파지 않고 벽선을 세웠다. 그러면 기둥과 벽선 사이가 뜨게 되고 겨울철이면 그 사이로 외풍이 심하게 들어오니 추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둥에 흠을 파고 벽선을 끼운 집에는 외풍이 거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