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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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명 안드레 (Andre), 1836년 (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P. Maubant)에게서 영세(領洗)를 받고 예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상경(上京)하였다. 역관(譯官) 유진길(劉進吉)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모방 신부의 소개장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선전교(朝鮮傳敎)의 책임을 진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칼레리 신부로부터

 역대 왕조 중 가장 강성하고 대륙적 기상이 웅비했던 고구려의 왕으로서 ‘광개토대왕’이란 칭호는 땅을 널리 개척한 임금이란 뜻으로, 생존 시에는 영락대왕으로 불리었다. 어려서부터 영웅적 기상과 웅대한 포부를 가진 대왕은, 아버지 고국양왕이 죽자, 391년 18세의 나이로 왕에 즉위하였다.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국력신장에 진력하고, 군사훈련 강화 및

 자는 백원(伯源), 호는 고산자(古山子), 본관은 청도(淸道). 황해도 출신, 어려서 서울로 이주, 미천한 가문의 출신이었으나 학문을 열심히 닦았으며, 정밀한 지도의 작성에 뜻을 품었다. 그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지(地志)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지란 역대 제도와 문물, 풍습 등과 지역과의 관계를 적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에

 중원소경(中原小京 :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의 사량(沙梁) 출신. 육두품(六頭品)으로 보이는 내마(奈麻) 석체(昔諦)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꿈에서 머리에 뿔이 돋친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태어나자 머리 뒤에 높은 뼈가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현자(賢者)에게 가 물어보니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

 호는 단원(檀園) 본관은 김해(金海),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솜씨가 뛰어났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제대로 그림공부를 하지 못했다. 호조참판(戶曺參判) 강세황(姜世晃) 앞에서 그림을 그려, 그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되었다.  1771년(영조 47) 왕세손(뒷날 정조)의 얼굴을 그렸고

 초명은 온천(殷川), 본관은 금천(衿川), 서울출생, 고려개국공신인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궁진(弓珍)의 아들, 아버지로부터 학문과 무예를 배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김장길의 양아들이 됨. 983년(성종 2) 문과(文科)에 장원,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거란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본관 김해(金海).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代孫)으로, 화랑이 되어 화랑정신을 기르고, 611년 삼국통일을 기원(祈願)하고 무술을 닦은 뒤 국선(國仙)이 되었다. 644년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의 성을 쳐 이기고 이듬해 1월에 개선하였다.  그런데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매리

 자는 원춘(元春), 호는 추사(秋史), 본관은 경주(慶州), 판서 노경(魯敬)의 아들로 백부 노영(魯永)에게 입양(入養)되었다. 1809년(순조 9) 생원(生員)이 되고, 181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설서(說書), 검열(檢閱)을 거쳐 1823년 규장각 대교(奎章閣待敎)가 되었다. 충청우도 암행어사(忠淸右道暗行御史), 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김익순(金益淳)의 손자로서 180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부 김안근(金安根)과 모 함평 이씨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돌며 주옥같은 수많은 시를 남겼다.  명문가문의 자손이었

 일찍이 중이 되어 백현원(白峴院)에 있다가 1232년(고종 19)에 몽고병이 침입하므로 처인성(處仁城 : 지금의 龍仁)에 피난하였는데, 이때 몽고의 원수 살리타(撒禮塔)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 공으로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여 섭랑장(攝郎將)에 임명되고, 뒤에 충주산성방호별감(忠州山城防護別監)이 되었다. 그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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