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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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종실록 2권 문종즉위년 : 이홍위(李弘暐)는 덕이 온화하고 천자가 총명하여...  문종실록 3권 문종즉위년 : 세자는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게 총명하여 학문이 날로 향상되니...  숙종실록 32권 : 어진 명성과 아름다운 태도를 지녔으며 세손과 원사로서 어린 시절부터 세종이 등에 업어주는 사랑을 입었는데 (중략) 정

 삼국사기를 보면, ‘무령왕은 키가 8척이고, 눈매가 그림같이 아름다웠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라고 돼 있으며 또한 복식에 대해서는 ‘오라관에 금제관식을 했으며 자주색의 소매가 큰 두루마기를 입고 푸근 비단바지에 흰 가죽 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라고 되어 있다.  무령왕은 대내적으로 즉위초기의 정치적 혼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眞平王)의 장녀이며,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선덕여왕 은 재위 초반 민생의 안정에 주력하여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도록 하는 구휼정책을 활발히 추진하였으며,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를 건립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호는 면암(勉庵), 본관은 경주(慶州), 포천(泡川) 출신.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조선 말기의 거유(巨儒)로서 1855년(철종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1868년(고종 5) 장령(掌令)으로서, 토목공사(土木工事)로 인한 국민 부담의 가중, 당백전(堂百錢)의 발행에 따른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 대원군(興宣大院

 호는 단재(丹齋), 본관은 고령(高靈). 충북 청주(淸州) 출신. 어려서부터 독서에 열중, 제가(諸家)의 책을 박람(博覽)하였으며, 20세에 성균관 박사(博士)를 지냈다.  황성신문(皇城新聞),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에 논설을 쓰고, 독사신론(讀史新論)을 발표하는 한편,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의 앙양과 독립정신의 고취에 힘썼

 호는 사임당(師任堂 : 思任堂 : 師姙堂), 시임당(媤姙堂), 임사재(任師齋). 본관 평산(平山). 강원도 강릉(江陵)출신.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사임당이 태어난 강릉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빛나는 문화와 전통이 서린 곳으로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의 대관령이 병충처럼 둘러있고, 동쪽에는 푸르른 동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산수와 자연이 그립같

 호는 의암(毅庵), 본관은 고흥(高興). 춘천출생.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을 체결할 때 문하(門下)의 유생들을 이끌고 상소하여 이를 반대했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친일내각(親日內閣)이 들어서고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켜 충주(忠州), 제천(堤川)

 교명 안드레 (Andre), 1836년 (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P. Maubant)에게서 영세(領洗)를 받고 예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상경(上京)하였다. 역관(譯官) 유진길(劉進吉)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모방 신부의 소개장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선전교(朝鮮傳敎)의 책임을 진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칼레리 신부로부터

 656년 좌평(佐平)으로 있을 때 의자왕이 신라와의 싸움에서 연승하여 자만과 주색에 빠지자 나라가 위태로워짐을 주간하다가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가 죽음에 임박하여 왕에게 글을 올리기를「충신은 죽더라도 임금을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죽으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臣)이 항상 시세의 흐름을 볼 적에 멀지 않아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

 648년 황룡사(皇龍寺)에서 중이 되었으며, 각종 불전(佛典)을 공부하며 수도에 정진하였다. 집을 불문에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자기가 데어난 자리에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661년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려고 길을 떠났다. 밤이 늦어 남양주 부근의 한 무덤에서 하룻밤을 자게 됐는데, 밤중에 갈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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