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표준영정

유인석 (柳麟錫)
1841 (헌종 7)~1915, 조선의 학자, 의병장(義兵將)

 호는 의암(毅庵), 본관은 고흥(高興). 춘천출생.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이다.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을 체결할 때 문하(門下)의 유생들을 이끌고 상소하여 이를 반대했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 친일내각(親日內閣)이 들어서고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켜 충주(忠州), 제천(堤川) 등지에서 싸워 김규식(金奎軾), 권소(權瀟) 등 부패관리를 죽였으나 장기렴(張基廉)의 관군에 패전하여 단양(丹陽)으로 퇴거하였다.


  관군의 감시를 피해 내일을 기약하며 만주로 갔다. "지금 나라를 버리고 타국으로 압록강을 건너감은 기필코 왜인들에게 원수를 갚고 다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우기 위함이니, 그렇지 못하면 죽어서 돌아올 것이다". 이렇듯 일제에 굴하지 않고 의병을 이끌고 타국에서 재개의 기회를 노리며 해외 독립운동 기지를 구축하였다. 나라를 되찾으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애국(愛國), 애도(愛道), 애신(愛身), 애인(愛人)이란 4애의 의병규칙을 만들어 지켰다.


 1909년(융희 3)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해주 의병연합체가 형성되었으며, 이상설(李相卨), 이범윤(李範允) 등에 의하여 그는 13도 의군도총재(義軍都總裁)에 추대, "13도 동포에게 고함"의 포고문을 발표하며 국내외 2천만 동포의 단결과 결사보국의 충정을 호소하였다. 의병연합체를 이끌고 두만강 연안으로 진격을 기도했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한일 합방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중국 봉천성 관전현(奉天省 寬甸縣)에서 병사했다. 한말의 거유(巨儒)인 이항로의 학통(學統)을 계승한 학자로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수여되었다.

[著書] 昭義新編, 華東續綱目 等 [文獻] 國朝名臣錄, 韓國近代人物百人選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6
- 제작작가 : 조규환
- 영정크기 : 세로142cm X 가로71cm
- 소 장 지 : 제천 이초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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