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표준영정

김대건 (金大建)
1822(순조 22)~1846(헌종 12) 조선말기의 신부(神父)


 교명 안드레 (Andre), 1836년 (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P. Maubant)에게서 영세(領洗)를 받고 예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상경(上京)하였다. 역관(譯官) 유진길(劉進吉)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모방 신부의 소개장을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선전교(朝鮮傳敎)의 책임을 진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칼레리 신부로부터 신학(神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서양 학문과 프랑스어, 중국어, 라틴어를 배웠다.


 1842년 수업을 끝낸 다음 기해박해(己亥迫害) 이후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고국에 밀입국을 시도하였다. 처음 의주(義州)를 거쳐 서울로 향하다가 감시가 심하여 되돌아갔고, 얼마 후 페러올 주교로부터 고국에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번에는 두만강변 경원(慶源)을 거쳐 입국하려다가 또 실패하고 빠자즈([八子家]로 돌아가 메스트르 신부 문하에서 신학을 연구하였다.


 1845년(헌종 11)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서울에 잠입하는 데 성공하여 천주교 대탄압 이후 위축된 교세 확장에 전력을 기울이다가 다시 프랑스 외방전교회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쪽배를 타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금가항(金家港) 신학교에서 탁덕(鐸德)으로 승품(陞品),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신부가 되어 만당성당(滿堂聖堂)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執典)하였다. 8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주교와 함께 상하이[上海]를 떠나 충남 강경(江景)에 잠입하여, 서울을 향하여 각지를 순방하면서 비밀리에 신도들을 격려하고 전도(傳道)에 힘썼다.


  1846년 선교사의 입국과 선교부와의 연락을 위한 비밀 항로 개설을 위하여 백령도 부근을 답사하다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전추 6회에 걸친 혹독한 고문 끝에 선교부와 신부들에게 보내는 편지 및 교우들에게 보내는 유서를 쓴 후 25세로 순교, 미산리(美山里)에 안장되었다.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위(福者位)에 올랐다.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6
- 제작작가 : 문학진
- 영정크기 : 세로120cm X 가로80cm
- 소 장 지 : 당진 솔뫼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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