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문화상징

초가집
선정취지 및 필요성
  • 초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살림집 문화의 으뜸 상징으로서 지난날의 농촌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추억이다. 우리나라의 초가지붕은 물매가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호박이나 박 넝쿨을 올리며 가을철에는 고추나 무오가리(무말랭이)와 같은 것을 널어 말리기도 하였다. 지금은 민속마을이나 민속촌에서나 접할 수 있는 ‘남의 집’이 되어 버렸지만, 외국인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로 주목하고 있고 우리 역시 이제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초가는 짚·갈대·왕골·띠·풀 등의 재료로 이엉을 만들거나 그 재료를 그대로 이어 지붕을 올린 집으로서 지붕의 재료에 따라 통상 기와집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 기와집의 벽은 모두 뼈대[기둥과 보]를 갖추어야 하지만 초가집의 경우는 나무로 뼈대를 세운 후에 흙벽으로 만든 뼈대집과 기둥 없이 통나무를 포개 얹어서 벽체를 만드는 귀틀집, 벽체를 돌담으로 축조한 돌담집 등으로 벽체 구성 방식이 다양하다. 초가의 역사는 아주 오래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밑에서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 후 자연피해를 일정하게 막을 수 있는 초막을 치게 되었다.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집이라는 것을 짓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초가는 집이 생겼을 때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집터를 잡고 필요한 재료를 가져다가 손질하여 집을 지었다. 모두 깊숙한 움집이나 반움집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초가지붕의 재료가 농사의 부산물이 아니라 자연에서 채취한 억새나 띠 같은 풀이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 이후 벼·조·수수 등의 농작물을 심게 되면서 그러한 작물의 짚을 지붕재료로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선사시대의 집들은 가야시대 집 모양 토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붕을 띠풀로 이고 조금 넓은 나무 누리개로 누른 다음 나무못으로 고정하거나 긴장대로 다시 눌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초가는 기와가 지붕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삼국시대 이전까지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민가의 가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조선시대가 되면 이전 시기에 비해 자연을 활용하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높아지고 경제와 문화가 발달하면서 주택의 유형과 형태도 다양해졌다. 특히 이 시기에는 지붕재료의 생산이 발달하고 그 종류가 늘어났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처음으로 '별와요(別瓦窯)'를 설치하고 거기에 관리들을 배치하며 각 도에서 중들과 기와 굽는 장공인 들을 동원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초가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기와집에서 생활했던 것은 아니다. 반상을 엄격하게 구분하던 신분구조와 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왕실이나 양반들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 민들은 여전히 그 주변의 소규모초가에서 생활했다. 일제시기에는 일식가옥들이 속속 세워지고 근대적 건축방식이 도입되었지만 아직 민가에까지 보급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60~70년대의 ‘새마을사업’을 기점으로 이 땅의 모든 초가가 사라졌다. 이른바 조국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시골마을의 특성이나 전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박한 화장을 한 것 같은 원색의 알록달록한 슬레이트지붕이 초가지붕을 대신했다. 그리하여 수천 년 전통의 초가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민속마을이나 민속촌에나 가야 초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초가는 우리만의 전통가옥 문화가 아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초가와 유사한 ‘풀집’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 단지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면서 가옥의 형태가 콘크리트 건물로 변했을 뿐이다. 지금도 남미 아프리카나 여러 소수민족 집단의 가옥형태에서 풀집, 우리의 초가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풀집을 관광지나 박물관, 문화재보존지구 등지에서나 만날 수 있다.
기대효과
  • 최근의 웰빙 바람으로 누구나 환경 친화적 건축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40여 년 동안 콘크리트에 갇혀 버려두었던 우리의 전통가옥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황토나 온돌 등을 현대건축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5년에 한 번씩 지붕을 새로 이어야 하는 초가의 불편함이 걸림돌로 작용한 탓이다. 다들 초가지붕을 올리고 살 수는 없지만 이번 기회에 초가 속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초가는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볏짚과 흙벽이 외부와의 온도흐름을 차단하기 때문에 보냉·보온효과 탁월한 과학적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황토와 짚을 통한 초가의 효능은 참으로 다양하다. 유익한 원적외선을 복사하여 인체에 흡수시킴으로서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고 세포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또한 외부 공기의 유입이 적어 난방에너지를 절약하고 습도조절력이 뛰어나며, 황토미립자 속의 작은 구멍으로 인하여 공기정화기 역할을 한다. 요즘은 이러한 기능을 현대건축에 많이 응용하고 있는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접목시키고 세계 건축시장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우리의 문화를 널리 홍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마을 주민들이 품앗이하여 초가지붕을 잇던 공동체의식은 점차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 시사 하는바가 클 것이다.
참고자료
  • 황헌만 사진·김홍식 외 글,『초가』, 열화당, 1991. / 윤원태,『한국의 전통 초가』, 재원, 1998.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한국 민속의 세계』4, 2001. <이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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