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공감

경기도 파주의 미꾸라지 털레기와 추두부
 

가을고기(秋魚)라 하여 특별히 추어(鰌魚)라는 이름이 붙은 미꾸라지는 단연, 가을에 어울리는 식재료이다. 추수할 무렵이 되면 겨울잠을 대비해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미꾸라지는 오래전부터 요긴한 보양 식재료가 되어 주었다.

 

미꾸라지로 만드는 음식 중에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추어탕이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꾸라지를 삶아서 곱게 으깨 입에 걸리는 것 없이 뼈를 추린 다음 끓인다. 예전에는 통째로 끓이면 추탕, 갈아서 끓이면 추어탕으로 구분했지만 요즘은 그저 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서 쓰는 추세다.

 

식품영양학자이자 음식문화학자인 이성우 교수는 『한국요리문화사(韓國料理文化史)』에서 “살은 씹히는지 안 씹히는지 알 수 없으나 아삭아삭 미꾸라지의 가느다란 등뼈가 씹히는 소리는 쾌감을 더하게 한다”라고 서울식 추탕의 맛을 설명하고 있다.

 

소고기, 버섯, 대파, 두부 등을 듬뿍 넣어 끓이는 서울식 추탕의 맛은 얼큰하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섞어 넣기 때문이다. 전라도나 경상도식 추어탕이 된장으로 맛을 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얼큰하고 텁텁한 털레기는 여러 사람이 모여 먹던 추렴음식

 

경기도 서북부 지역인 파주, 고양, 김포 등에는 털레기라는 토속음식이 있다. 개울에서 잡은 민물고기에 벼를 베기 전 물을 뺀 논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섞고 고추장을 풀어 넣어 얼큰하게 끓인 늘임 음식이다. 추탕처럼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다. 언뜻 민물매운탕과 비슷해 보이지만 들어가는 재료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매운탕은 사철 먹을 수 있지만 원래는 여름에 먹는 음식이었다. 더위를 피해 냇가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며 노는 천렵(川獵) 음식이기 때문이다. 농가월령가 4월령에 나오는 구절이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川獵)을 하여 보세. 촉고(數罟)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 내어, 반석(盤石)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侯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가물어 냇물이 줄어드는 시기이다. 고기 잡는 것도 한결 수월할 터. 모내기를 끝낸 후 모처럼 한가한 하루, 가는 그물에 은빛 고기를 잡아 너럭바위에 솥을 걸고 끓여내는 매운탕의 맛은 가히 열구자탕(悅口資湯) 부럽지 않았을 테다. 복더위를 피해 냇가에서 탁족(濯足)하며 끓여먹은 것도 역시 매운탕이었다.

 

털레기는 이런저런 재료를 털털 털어 넣고 끓여먹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지요. 미꾸라지만 쓰기도 하고, 잡어를 섞어 넣기도 해요. 맹물에 고추장을 풀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던져 넣은 다음 깻잎, 애호박, 풋고추, 홍고추 등 주변에 있는 것들을 대강 툭툭 뜯어 넣어요. 매운탕처럼 끓이지만 국수, 쌀, 수제비 등을 넣어 걸쭉하게 끓이는 게 다릅니다. 끓이자마자 먹어야지 식으면 퉁퉁 불고 떡처럼 굳어서 먹을 수가 없어요.

경기도 파주에서 ‘종화네 돌솥 추어탕’을 운영하는 나연화 씨가 끓인 털레기는 걸쭉하고 텁텁했다. 칼칼한 매운탕과는 분명 다른 맛. 동네 사람들이 모여 먹던 추렴음식이라고 한다. 미꾸라지 한 근(400g)이면 열사람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으니 배고픈 시절에 맞춤한 요깃거리였다.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밀가루에 버무려 넣다보니 이놈들이 요동을 쳐 온 사방에 벌건 고추장 국물이 튀고 난리가 났다.

 

원래 미꾸라지는 진흙 속에서 자라기에 흙내가 심하다. 소금을 뿌리면 저희들끼리 몸을 틀고 부딪치는 동안 점액질이 벗겨지면서 흙내와 비린내가 가신다. 소금도 귀하던 시절에는 꺼끌꺼끌한 호박잎 뒷면으로 문질러가며 닦으면 거품이 오르면서 점액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누렇게 익은 맷돌호박을 반으로 가른 다음 속을 파내고 물을 채웁니다. 여기에 미꾸라지를 넣고 하루만 두면 이놈들이 호박 속을 파먹어요. 그 미꾸라지로 털레기를 하면 고기가 달고 맛있지요. 미꾸라지가 넉넉하면 깻잎에 둘둘 말거나 반으로 가른 고추 속에 넣어 튀겨 먹습니다. 예전에는 대파 푸른 잎 빈 공간에 미꾸라지를 끼워 넣은 다음 잦아든 숯불에 던져 구워 먹어도 별미였어요.

통미꾸라지를 넣고 굳혀 만드는 추두부

 

옛사람들은 즐겨 먹었지만 요즘은 통 보기 힘든 미꾸라지 음식이 있다. 추두부이다. 말 그대로 미꾸라지를 넣어 굳힌 두부. 19세기 이규경(李圭景)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성균관 인근에 살던 천민인 반인(伴人)들이 해먹던 추두부탕(鰍豆腐湯)이 소개되어 있다. 솥에 물을 붓고 미꾸라지를 넣은 다음 불을 지피면 미꾸라지들이 놀라는데 이때 차가운 두부를 넣으면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는다는 것이다. 이 두부를 썰어서 지진 다음 탕을 끓인 것이 추두부탕이다.

 

살아있는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1924년 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을 쓴 이용기는 별추탕(別鰍湯)이라는 음식을 통해 어림도 없는 얘기라는 의견을 낸다.

모르는 사람은 두부와 밋구리를 찬물에 넣고 불을 때면 밋구리가 찬 두부 속으로 뚫고 드러간다하니 물이 더우면 밋구리가 벌써 죽나니 하가에 드러갈새가 있으리요. 참 우수운 일이니라.

나연화 씨도 여러 번 시도해보았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단다. 그래서 간수 넣어 엉기기 시작하는 순두부를 한 켜 깔고 그 위에 삶은 미꾸라지를 얹은 다음 다시 순두부를 붓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서 만드는 추두부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고.

일흔을 넘긴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으로는 솥에 연두부를 넣고 미꾸라지를 넣으면 들어가는 놈은 들어가고 아니면 말고, 그걸 수저로 떠먹었다고 하세요.

1925년 출판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서예가 최영년은 “서리가 내릴 무렵에 두부를 만들어 이것이 미처 응고되기 전에 추어를 넣고 다시 눌러서 굳게 하여 생강, 천초(川椒)를 넣고 가루를 섞어 삶는다”고 했다. 나연화 씨가 만드는 추두부는 해동죽지에서 이르는 방법과 비슷하다.

 

잘 굳은 추두부를 썰어서 들기름에 구워 양념간장을 찍어 먹으면 비린 맛이 없고 고소하다. 반찬으로도 좋지만 막걸리에 곁들이는 안주로 그만이다.

시래기와 우거지를 듬뿍 넣어 끓이는 추어탕

 

미꾸라지도 넉넉한 터. 내친김에 2~3일 해감한 놈들로 구수한 추어탕을 끓였다. 소금만 뿌려 씻어도 되지만 식초와 맛술을 섞어 쓰면 흙내를 없애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푹 끓여 익힌 미꾸라지를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가며 뼈를 추려낸 후 양구에서 가져오는 무청 시래기와 배추 시래기를 섞어 넣고 끓인다. 천연발효 식초를 조금 넣으면 마지막 남은 비린내가 말끔하게 가신다.

 

먹을 때는 산초가루, 다진 마늘, 다진 고추, 부추 중에 입에 당기는 것을 넣어 먹는다. 방아잎이나 방아꽃을 구할 수 있다면 조금 찢어 넣어도 좋다. 펄떡이는 힘으로는 딱히 당할 것이 없을 미꾸라지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은 한 그릇, 절로 기력이 오를 만한 맛이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미꾸라지는 논이나 농수로, 늪처럼 진흙이 깔린 곳에 주로 산다. 더러운 물이나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도 잘 견디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 미꾸라지는 진흙 속에 있는 생물을 먹고 자라는 것이 특징. 알은 4~6월에 주로 낳기 때문에 이때는 맛이 별로 없다. 가을에 통통하게 기름이 올라 맛이 좋아진다.
3. 미꾸라지에 묻은 진흙을 씻어낸 후 굵은 소금을 뿌리면 저희끼리 꿈틀거리는 과정에서 몸의 진액이 벗겨진다.
4. 소금을 뿌려두고 한참 기다리면 거품이 나면서 미끄러운 진액이 벗겨지고 깔끔해진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가을에 수확한 맷돌호박을 반으로 자르고 속을 파낸 다음 물을 채우고 미꾸라지를 넣는다.
2. 호박 안에서 헤엄치며 호박 살을 파먹은 미꾸라지는 맛이 더 좋아진다고 믿어 옛 어른들은 일부러 하루 정도 호박 속을 파내고 미꾸라지를 넣어두었다.
3. 미꾸라지를 문질러 씻을 때 호박 뒷면의 꺼끌꺼끌한 부분을 사용한다.
4. 호박 뒷면으로 박박 문질러가며 미꾸라지를 씻으면 점액질이 제거된다.
5. 거품과 함께 점액질이 벗겨지면 비린 맛이 줄어든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맷돌 호박 속살을 먹은 미꾸라지로 끓이는 털레기.
2. 고추장, 다진 마늘, 된장 등을 섞어 넣고 펄펄 끓인 국물에 불린 쌀을 넣는다.
3. 미꾸라지가 부서지는 것을 막고 국물을 걸쭉하게 하기 위해 밀가루에 묻힌 미꾸라지를 넣는다.
4. 쌀이 어느 정도 퍼지고 미꾸라지가 익으면 국수를 넣어 끓인다.
5. 마지막으로 수제비를 떠서 넣고 갖은 채소를 넣어 걸쭉하게 끓이면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미꾸라지 털레기가 된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칼칼한 맛은 덜하지만 갖은 채소와 미꾸라지에서 우러나오는 구수한 국물맛이 일품인 털레기.
2. 통째로 익힌 미꾸라지를 수저로 툭툭 끊어가며 먹는 털레기.
3. 양구에서 가져오는 무청 시래기는 추어탕의 구수함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곱게 갈아서 걸러낸 콩물을 끓인 후 간수를 부으면 콩물이 엉기면서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2. 순두부를 면보에 붓는다.
3. 물이 적당히 빠지면 삶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얹는다.
4. 미꾸라지 위에 엉긴 순두부를 다시 얹고 면보로 잘 싸서 굳힌다.
5. 무거운 것을 얹어 모양을 굳혀 만든 추두부.
6. 두부가 식은 다음 칼로 잘 썰면 미꾸라지의 단면이 드러나는 추두부가 완성된다. 기름을 두르고 지져서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는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점액질을 제거한 미꾸라지는 뜨거운 물을 채운 솥에 넣어 푹 무르도록 삶는다.
2. 충분히 익은 미꾸라지는 꺼내서 체에 밭쳐 손으로 문질러가며 살과 뼈를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3.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계속 문지르면 뼈만 남는다.
4. 미리 삶아서 지린 맛을 우려낸 무청 시래기는 추어탕에 제일 잘 어울린다.
5. 미꾸라지 살과 된장으로 무친 시래기, 마늘 등을 물에 넣고 오랫동안 저어가며 끓이면 구수한 추어탕이 된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미꾸라지의 비린 맛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방아잎과 방아꽃.
2. 천연발효 식초를 마지막에 넣으면 비린 맛을 없애고 구수한 맛이 살아난다.
3. 시래기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낸 추어탕.
4. 추어탕은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다진 마늘, 다진 고추, 부추 등을 곁들이면 향이 좋고 비린 맛이 없어진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반으로 갈라 속을 털어낸 고추에 밀가루를 묻히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채워 넣어 아무린 다음 튀겨내는 미꾸라지 고추튀김.
2. 넓은 깻잎 한쪽 면에 밀가루를 묻힌 다음 미꾸라지를 얹어 돌돌 말아 튀기면 향이 좋은 미꾸라지깻잎튀김이 된다.
3. 미꾸라지 튀김에 초간장을 곁들였다.
4. 예전에는 논두렁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대파 푸른 잎 부분에 넣어 짚불에 구워먹었다.
5. 거뭇거뭇하게 탄 대파를 걷어내면 통통하게 잘 익은 미꾸라지 구이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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