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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돋는 선조들의 문학 풍류로 가득했던 조선시대 가사와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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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돋는 선조들의 문학 풍류로 가득했던 조선시대 가사와 시조

라임 돋는 선조들의 문학 풍류로 가득했던 조선시대 가사와 시조

우리 민족은 예부터 가무를 즐겼던 풍류의 민족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한글로 노래를 짓고 악보를 만들었던 조선시대에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등을 읊조리면 어느덧 선조들의 흥과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낭만의 문학

송강집은 송강 정철의 작품을 엮은 시문집이다 ⓒ한국가사문학관 송강집은 송강 정철의 작품을 엮은 시문집이다 ⓒ한국가사문학관

조선시대에 괄목할 만한 발달을 이루어낸 가사(歌辭)는 당시 시조와 함께 크게 유행하며 조선의 문학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시대 궁중에서는 잔치에 사용되었던 연향가사로 자리매김한 고려가요가 있었다면 민간에서는 ‘한림별곡’체의 경기체가가 유행했다. 한림별곡은 무신 세력 집권기의 고려시대 문인들의 유흥적 생활과 감정을 읊은 노래로 창작연대는 고려 고종 때인 1216년~1230년 사이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글의 보급과 함께 경기체가는 점차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가사의 발생은 콕 집어 어느 때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나 많은 전문가들이 조선 성종임금 때 인물인 정극인의 ‘상춘곡’을 그 효시로 보고 있다. 이후 가사는 우리 문학이 리듬이나 운율 같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창작했던 운문 문학에서 그러한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 산문 문학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문학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정극인의 상춘곡은 차천로의 ‘강촌별곡’, 송순의 ‘면앙정가’ 등으로 계승되어 이후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가사 문학은 조선시대 양반이 독점하는 고립된 문학이 아닌 평민과 부녀자에게 널리 퍼져 향유하는 대중적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가사문학관에 전시된 정철의 ‘관동별곡’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에 전시된 정철의 ‘관동별곡’ ⓒ한국가사문학관

가사 문학의 산실 담양이 낳은 걸작들

식영정과 소쇄원. 전남 담양은 가사 문학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1 ⓒshutterstock
식영정과 소쇄원. 전남 담양은 가사 문학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2 ⓒshutterstock 식영정과 소쇄원. 전남 담양은 가사 문학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shutterstock

가사 문학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지역이 있다면 전라남도 담양일 것이다.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 담양에 남아있는 수많은 정자(亭子)들은 시인, 묵객, 선비들이 노니는 교류의 장이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문학과 학문을 잉태시킨 요람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송순이 낙향하여 담양 제월봉 아래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경치와 계절을 노래한 면앙정가를 비롯해 이서의 ‘낙지가’, 정철의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정해정의 ‘석천별곡’에 이르기까지 담양 지역에 전하는 가사 문학만 18편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담양은 지금까지 가사 문학의 산실이라고 불리고 있다.

울창한 숲과 계곡을 끼고 들어선 담양 소쇄원은 비정한 현실 세계를 떠난 양산보라는 선비의 개인적인 은신처였으나, 그와 뜻을 같이하는 많은 문인들이 소쇄원에서 교류하면서 호남 지역 선비들의 정신적 근거지로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당시 소쇄원을 무대로 양산보와 교류하던 이들은 소쇄원의 그윽한 정취에 반해 ‘소쇄원 48영’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 하서 김인후를 비롯,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서하당 김성원, 송강 정철 등 당대 조선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기라성 같은 문인과 학자들이었다. 가사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송강 정철의 작품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남해의 외딴 섬에서 꽃 피운 풍류

고산 윤선가 만년을 보내며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주옥같은 시편을 쏟아낸 보길도 세연정 ⓒshutterstock 고산 윤선가 만년을 보내며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주옥같은 시편을 쏟아낸 보길도 세연정 ⓒshutterstock

이번에는 무대를 남해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 보길도로 옮겨 보자. 병자호란 당시 조정의 중신을 지낸 고산 윤선도는 의병을 모아 북으로 향하려다 그새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낙심한 끝에 마음을 바꿔 먼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운다. 그렇게 제주도로 향하던 윤선도는 풍랑을 만나 잠시 이름 모를 자그마한 섬에 닻을 내리게 되는데바로 이 섬이 고산의 문학적 꽃을 피우게 만든 장소인 보길도이다.

작은 섬의 그림 같은 풍광은 슬픔에 젖은 윤선도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고 만다. 제주도로 가려던 뜻을 아예 접어버리고 섬 한복판으로 들어가 격자봉 밑에 집을 짓고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어 연못을 만들어 노닐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만년을 지내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비롯,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주옥같은 시편을 쏟아낸다. 지금도 그의 서정적 시심이 녹아있는 보길도 세연지 연못가에 서면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풍류로 가득한 노시인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기서 지국총은 노에서 나는 소리인 ‘찌그덕’, 어사와는 어부가 내는 소리인 ‘어여차’를 뜻한다.

어부사시사 어부사시사

어부사시사는 윤선도가 보길도를 배경으로 지은 40수의 단가(短歌)로 <고산유고>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고려 후기의 ‘어부가(漁父歌)’ 및 이현보의 ‘어부사(漁父詞)’를 계승한 고전시가인 어부사시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자연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東胡)를 돌아보고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다가온다.
                윤선도 – ‘어부사시사’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