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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를 녹이고 아늑한 겨울나기를 해 준 우리의 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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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를 녹이고 아늑한 겨울나기를 해 준 우리의 화로

매서운 추위를 녹이고 아늑한 겨울나기를 해 준 우리의 화로

구름장 외에는 별 다른 난방시절이 없던 시절 춥고 긴 겨울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아늑한 겨울나기를 위해 동서양의 사람들은 저마다 지혜를 짜내고 알맞는 도구들을 사용해 왔다. 우리 전통에서는 대표적인 겨울나기 친구가 바로 '화로'다. 추운 겨울날 온

눈보라가 치는 한국의 겨울밤, 천지도 분간할 수 없는 이 밀림같이 눈발이 날릴 때 온돌방의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정경이야말로 겨울밤의 맛이다.

– 정목월<한국의 혼>

화로

인간에게 기상과 기후는 생존을 위한 자연의 혜택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특히 혹독한 더위와 추위는 반드시 견뎌내야 했는데, 이러한 환격조건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형성시켰다. 꼭두새벽 어머니들은 화로의 불씨를 부엌으로 가져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짓고, 물도 데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부젓거락이나 부삽을 화로 위에 가로로 걸쳐놓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나 된장 뚝배기를 데웠다. 화로에 석쇠를 걸쳐놓고 생선을 굽기도 했다. 상이 다 차려지면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밥그릇을 꺼내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화로는 아이들의 겨울철 주전부리를 위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화로에 차를 달이거나 마른 떡을 석쇠에 올려 구워먹기도 했으며 불길이 사그라졌을 때는 밤이나 고구마를 잿불에 묻어 두었다.

화로는 조리와 난방 및 옷 손질 등에 사용하던 중요한 살림살이 용품으로, 우리 민속에서 의식주생활 연구에 중요한 유형문화유산이다. 이와 함께 불씨를 소중하게 여기던 전통사회의 관념을 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화로의 역사

화로의 역사

화로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화로는 본래 화덕에서 비롯된 말로 선사시대의 화덕이 변형하고 발전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전통화로라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까지 쭉 살펴보면 화로의 모형이 조금씩 다르다. 청동기시대의 화덕이 집 자리 가운데 땅을 오목하게 파고 주위에 어린아이 머리만 한 돌들을 둘러놓는 정도의 화로였다면, 철기시대에는 화로의 테두리를 진흙으로 둘러놓고 방 한끝에 설치되는 첫 단계를 거쳤다. 한편 화로는 상하 계층과 빈부의 차이 없이, 그리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나 두루 쓰이는 살림살이였다.

상류계층의 가정에서는 주인이 아랫목에 앉아 손님을 맞을 때, 화로를 손님 가까이 놓는 것을 예의로 삼았다고 한다. 서민층에서도 화로를 연장자나 손님 곁으로 밀어주어 이웃간의 따뜻한 정을 표하기도 했다.

부엌의 신, 조왕신

전통화로와 관련된 풍습도 있다. 예전에는 불씨가 재운을 좌우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았는데 집집마다 시어머니가 불씨가 담긴 화로를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었다. 조선시대 여염집의 아낙네들은 부뚜막에 불을 관장하는 조왕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나쁜 말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부뚜막을 발로 밟거나 걸터앉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새로 떠온 물을 그릇에 담아 부뚜막의 토대 위에 올려놨다.

불씨지킨 며느리(설화)

대대로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 오던 한 집안에 새로 며느리가 들어왔다. 시부모가 불씨를 절대로 꺼뜨리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며느리는 불씨를 지키던 첫날부터 그만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며느리는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불씨를 지켰는데, 어느 날 밤 벌거숭이 동자가 나타나더니 오줌으로 불씨를 꺼뜨리고는 달아났다. 며느리가 사력을 다해 쫓아갔는데 동자가 갑자기 어느 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곳을 파 보았더니 아이만 한 동자삼이 묻혀 있어서 그것을 캐어 와서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경북 청동군 내에 지금부터 700여 년전 현씨네 집안에 박씨 성을 가진 며느리가 들어왔다. 이 집은 조상대대로 불씨를 잘 관리하여 한 번도 꺼뜨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새 며느리가 부주의로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다. 실망한 며느리는 시집올 때 휴대했던 비단치마를 화로에 묻고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뒤에서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다시 돌아가 보니 불씨는 계속 피어 올랐다. 집안의 기쁨은 헤아릴 길이 없다.([영남의 전설] 1971)

옛날 3대째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집안에 새 며느리가 들어 왔다. 어느날 부엌에 가보니 불씨가 꺼져 있었다. 몇 차례 실수를 한 다음 며느리는 살며시 엿보았다. 만일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면 친정으로 쫓겨 가게 되어 있었다. 그랬더니 한 소녀가 불을 끄고 있었다. 잡으려고 하자 도망을 친다. 필사적으로 추격하자 소녀는 땅 속으로 사라졌다. 며느리가 땅을 치며 아우성을 치자 가족들이 달려 나왔다. 결국 그곳을 파 보니 금은보석이 많이 담긴 독이 나왔다. 그 뒤로 이 집은 며느리 덕에 큰 부자가 되었다.
([한국의 소화], 1969.)

이 민담은 1940년도 경기도 광주군 내에서 채록된 것인데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임석재의 [옛날이야기 선집3]에도 동화로 불씨이야기가 게재되어 있다. 불씨를 보존시키는 것만이 집안을 계승시키는 것이요,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주제가 심층에 깔려 있다. 이야기 내용은 앞의 것과 대동소이 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치마를 벌렁 걷어 올리고 오줌을 싸는 광경, 그리고 도망치는 소녀가 사라진 곳에 산삼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호남 영광 신호준 가옥

실제로 호남 영광 신호준 가옥에서는 500년 동안 지켜온 가문의 불씨를 간직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네이버지식백과
  • 대대로 내려온 불씨담의 성격과 불 기원신화적 면모
  • (권태효, 구비문학연구26, 한국구비문학회, 2008)
  • 불씨형 설화와 여성(최인학, 인하20, 인하대학교, 1984)